국내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 책임규명 조사가 지지부진하다. 당초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크레인 예인선의 부주의에 의한 사고가 분명함에도 사고 12일째인 18일까지도 경찰은 묵묵부답이다.
7일 발생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크레인 부선의 충돌과정은 대산해양수산청 관제실의 교신기록, 사고선박의 레이더 항적도, 기상상황 등을 통해 사실상 규명되었다. 해경은 사고 직후부터 삼성중공업의 예인선 선원들과 대산해양수산청 관제실 직원들을 소환해 조사했다. 유조선의 선원들에 대해서도 방문조사를 벌였다.
또 충돌한 크레인 부선과 유조선의 충돌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수중조사를 실시했고 사고 당시의 기상상황 등 환경적 요인에 대한 분석도 이미 끝마쳤다.
최상환 태안해양경찰서장도 지난 12일 “충돌시각이 당초 발표보다 15분 빠른 오전 7시이고, 와이어도 사고 10분전께 절단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구체적인 사고경위를 재구성했음을 밝혔다. 최 서장은 또 “사고선박들이 나름대로 피항조치를 취했지만 충분하지 않았으며 안이하게 판단한 점이 있다”고 말해 과실 책임도 어느 정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유조선과 크레인 중 어느 쪽 과실이 더 큰 가이다. 유조선측은 사고 30분전쯤 안전조치를 취하라는 대산해양수산청 관계자 연락을 받았지만 이동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닻줄을 풀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삼성중공업 예인선측은 충돌하기 1시간 전에 유조선에 비켜달라고 교신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해경측은 지금까지도 양측에 구체적으로 어떤 과실이 있었으며 어떻게 사법처리할지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내 굴지의 삼성중공업과 외국 유수의 선주회사가 관여된 사건이기에 해경이 너무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국내 유명 로펌인 광장과 김앤장이 각각 법률대리인을 맡은 뒤 경찰이 더 조심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에 대해 태안해경 관계자는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온 초대형 사건이고 향후 보상문제 등과 얽혀 미묘한 부분도 많은 만큼 신중을 기해서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며 “수사가 마무리된 뒤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태안지역 피해어민들은 “해경이 하루 빨리 속시원하게 사고경위와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히고 과실이 있는 사람과 회사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과실로 기름을 유출한 경우 해양오염방지법에 따라 징역 3년, 벌금 3,000만원까지 처벌 받게 된다.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 선장과 해운회사는 각각 징역1년과 3,000만원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당시 피해어민들은 보험사에 배상금으로 756억원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502억원만을 지급했다.
태안=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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