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스포츠로서의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초로 바둑을 포함한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가 지난주 태국에서 열렸다. 지난 6~11일 태국에서 개최된 제24회 동남아시안게임(South-East Asian Games)에서 바둑을 전시 종목으로 참여시킨 것이다.
첫 대회인 만큼 미비한 부분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스포츠로서의 바둑’의 위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음은 명지대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프로 기사 · 사진)의 대회 참관기.
동남아시안게임 바둑 경기에는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5개국이 출전했으며 브루나이에서 참관인 자격으로 선수단을 파견했다. 남자 개인, 여자 개인, 혼합 복식의 세 종목으로 진행됐는데 남자 개인과 혼합 복식에서 싱가포르, 여자 개인서 태국이 각각 우승했다.
본격적인 체육 대회의 일환으로 열린 사상 최초의 국제 바둑 경기여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기는 했지만 대회는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하게 치러졌다. 동남아 국가에 바둑이 보급된 지 이제 겨우 2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선수들의 실력도 뛰어났을 뿐더러 바둑을 향한 열정은 한중일 뺨칠 정도로 무척 뜨거웠다.
선수들은 물론 심판진도 다른 종목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통일된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특히 입상자에게 메달이 수여되고 각국 국기가 게양되고 우승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은 그 동안 바둑계에서 접하기 힘든 값진 경험을 참가자들에게 선물했다. 깔끔한 개회식과 웅장한 폐회식 또한 오래 기억에 남았다.
대회 준비를 위해 개최국 태국이 들인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태국은 물론 동남아 국가 대부분이 아직 바둑을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각국 올림픽위원회(NOC) 멤버 중 누구도 바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대회 준비가 거의 전쟁이나 다름 없었다는 전언이다.
불편한 점도 많았다. 바둑이 아직 온전한 체육 종목으로 인정 받지 못한 탓인지 일반 선수단 숙소에 합류하지 못하고 따로 지내야 했는데, 그나마 선수들과 대회 진행 요원의 숙소가 나뉘어져 효율적인 관리가 어려웠다.
평소 각국 프로 기사들이 국제 기전에서 받는 대접을 기대했다면 아마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매우 소외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바둑을 잘 모르는 각국 NOC 및 바둑협회와의 의견 조율도 쉽지 않았다.
스포츠 행사의 하나로서 바둑 대회를 진행하는 데 경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대회장의 개방 정도, 심판의 수와 역할, 기록 관리, 선수들의 에티켓, 대회 진행 규정 등 많은 사항들에 대해 전혀 선례가 없을 뿐 아니라 미리 논의된 것도 없어서 계속 혼선을 빚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일본룰을 사용하긴 했지만 여전히 논란이 많은 바둑룰 문제 역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드러났다.
2008년 베이징에서 열리는 인텔림피아드를 준비하는 국제바둑연맹(IGF),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앞둔 중국,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을 개최할 한국 등 세계 바둑계 전체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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