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는 2010년부터 자원개발 사업에서 이익을 낼 것 같습니다. 상승 여력이 충분합니다."(A애널리스트) "이미 자원개발 기대감으로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 또 다시 그 재료로 밸류 업 하는 건 무리 아닐까요?"(B펀드매니저)
단잠에서 깬 직장인들이 출근을 서두를 무렵인 17일 오전 7시30분. 서울 여의도 삼성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 사무실에 들어서니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30여명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각종 기업 정보와 증시 전망에 대한 의견이 오가는 도중 주식운용1팀 남동준(41) 팀장이 한마디 거든다. "내년에는 '내수'에 초점을 맞출까 합니다. 이제 중국도 인프라보다는 소비쪽에서 '빅뱅'이 일어날 테니까요. 건설, 은행, 음ㆍ식료, 금융 업종을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남 팀장은 1시간여의 회의가 끝나자 곧바로 컴퓨터에 앉아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선다. 그가 운용하는 펀드는 올해 초 출시된 '당신을 위한 코리아대표 주식종류형'.
이미 11월 초에 편입 종목과 비중을 조정한 터라 이날은 주가가 많이 올라 비중이 높아진 종목은 팔고, 주가가 빠져 비중이 낮아진 종목을 사들였다. 이어 S기업의 IR(기업홍보) 담당자 면담.
사무실로 찾아온 회사 관계자는 "중국 내 주요소 건설과 국내 의류업체 인수로 사업 탄력이 붙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남 팀장은 부하직원에게 "주가 산정을 다시 해 보라"고 지시한다. 요즘 중국의 소비 실태에 관심이 많아 구미가 당긴 탓이다.
남 팀장은 증시의 출렁임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기업만 좋다면 최근의 조정장을 이용해 적극 매수에 가담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펀드매니저들이 현금 보유 비중을 최대한 높이거나, 변동성이 적은 종목으로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나름대로 정면돌파를 선택한 셈이다.
그는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쇼크로 국내 증시가 급락했을 때도 저가 매수에 나섰고, 이 전략이 빛을 발해 펀드 운용수익률(1년)이 60%를 넘는다.
국내 주식형펀드 중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이다. 그는 "증시를 이기는 장사는 없지만 아무리 장이 나쁘더라도 좋은 기업은 있기 마련"이라며 "되도록 증시를 보지 않고 기업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증시는 복합적 요소들이 빚어내는 유기체인 만큼, 항상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특히 철저한 기업분석과 자기 확신이 없는 종목들은 항상 말썽을 부리기 마련이다.
올해엔 은행주가 남 팀장의 속을 까맣게 태웠다. 연초에 은행주들이 지지부진 할 줄 알고 편입 대상에 넣지 않았는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상승랠리를 탄 것이다.
그는 '아차' 싶어 은행주들을 급히 편입했지만, 다시 기다렸다는 듯 주가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수 차례 당하고 나서야 은행주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는 "아무리 전문가라도 확신 없이 시장에 끌려 다니다 보면 처참하게 깨진다"며 "당장 좋아 보이는 주식만 좇지 말고, 최소 1년 정도 자기만의 전망과 확신을 갖고 장기투자 하는 것만이 '쪽박'을 면하는 길"이라고 귀띔했다.
남 팀장의 투자 신조는 '항상 겸손하라'이다. 탐욕을 부리거나 교만하면 여지없이 주식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증시는 변덕스러운 애인 같아요. 정성을 다해 대하지 않으면 심술(주가하락)을 부리죠. 전문가인 펀드매니저도 수 없이 실패를 반복하지만, '왜 실패했는지'를 복기해 보면서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 뿐입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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