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 문학과지성사혁명과 이념과 절망과한국적 지식인의 전형
1963년 12월 17일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 제3공화국이 출범했다. 최인훈(71)의 장편소설 <회색인> 이 떠오른다. 그 당시를 살던 한국의 지식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회색인> 은 최인훈이 1963년 6월부터 1964년 6월까지 월간 '세대'에 연재한 소설이다. 회색인> 회색인>
'1958년 어느 비가 내리는 가을날 저녁에 독고준의 하숙집으로 그의 친구인 김학이 진로 소주 한 병과 말린 오징어 두 마리를 사 들고' 찾아드는 것으로 시작해, '1959년 어느 비가 내리는 여름 저녁' 김학이 다시 똑같은 술과 안주를 들고 독고준을 찾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회색인> 은 그렇게 4ㆍ19가 일어나기 전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은 주인공인 회색의 지식인 독고준의 사변(思辨), 내면의 독백을 따라 전쟁에서 이데올로기와 혁명으로, 한국사의 모순에서 인텔리겐차의 절망으로, 광대한 세계를 종횡한다. 김학이 "혁명이 가능했던 상황이란 없었어. 혁명은 그 불가능을 의지로 극복하는 거야"라고 할 때 독고준은 그 대답으로 "사랑과 시간"을 이야기한다. 회색인>
김학이 다시 "비겁한 도피"라고 하자 독고준은 "용감한 패배도 마찬가지"라고 하며, "패배를 거쳐서 사람은 자란다"는 김학의 말에 "무책임한 소리"라고 독고준은 응대한다.
"청춘을 따르자니 부족이 울고 부족을 따르자니 청춘이 울더라." 소설 속 한 소제목처럼 관념 속에 갇힌 수인(囚人) 같은 독고준의 모습은 최인훈이 남북의 이데올로기를 모두 버리고 제3국행을 택한 <광장> (1961)의 이명준에 이어 창조해낸, 한국적 지식인의 또다른 전형이다. 광장>
1977년 문학과지성사가 간행한 '최인훈 전집'의 두번째 책으로 나온 이 소설이, 그 시대적 배경이 50년이 된 올해까지 40여쇄를 거듭하며 계속 읽히고 있는 이유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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