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은 19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방송사들이 출구조사에 이어 개표 결과, 저녁 7시55분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당선 유력을 보도하자 아연실색하는 모습이었다. 고정 지지층마저 뒤돌아선 결과에 입을 다물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정동영 후보의 ‘대역전의 기적’을 기대했던 신당은 말을 잊었다.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오충일 대표와 손학규 이해찬 김근태 정대철 한명숙 정세균 추미애 공동선대위원장들은 침울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이들은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고,“일단 식사나 하고 오자”는 정대철 공동선대위원장의 제안에 따라 맥 빠진 표정으로 상황실을 떠났다.
정 후보는 당초 오후 5시30분께 당사에서 출구조사를 지켜볼 예정이었으나, 참패 소식을 미리 접하고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친 정 후보는 광주 5.18 민주묘역을 방문한 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피해 현장 복구활동 일정을 소화하고 오후 늦게 상경, 홍은동 자택에 머물며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봤다고 한다.
정 후보는 오후 9시20분께 당사에 도착, 당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수고했다”며 그간의 노고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일부 지지자들은 간간히 미소를 지어보인 정 후보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했다. 정 후보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민심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소름일 끼칠 정도”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한 의원은 “승부를 뒤집기 어렵다는 판단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차마 몰랐다”고 한숨지었다.
각종 부정과 불법 의혹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것은 결국 노무현 정권의 5년에 대한 냉정한 심판이었다는 지적이다.
신당은 대선 참패로 진로를 점치기 위기 국면을 맞았다. 당 내부에선 참패 소식이 알려진 뒤 당장 당 쇄신론이 제기되는 등 벌써 심상찮은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패배 가능성은 대선전부터 감지됐지만 이 정도로 참패를 당할 것으론 전혀 예상치 못했다.
신당의 앞날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일 것 같다. 과거 1997년과 2002년 대선 패배자인 한나라당과는 판이하다. 당시는 당 내부를 추스를 구심점이 있었지만 신당은 그렇지 못하다.
대선용 급조 정당으로 7개의 계파로 나눠져 있어 대선패배 책임론과 당쇄신론이 불붙을 경우 심각한 내홍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코앞에 닥친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이해관계로 계파들이 첨예하게 맞설 경우 분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당의 운명을 가를 첫 고비는 내년 1월의 전당대회. 조용히 당 내부가 정비된다면 ‘이명박 특검안’을 구심점으로 삼아 4월 총선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당권을 놓고 계파간 이전투구가 벌어지면 분당의 위기로 치달을 공산도 크다. 정동영계, 친노무현계, 손학규계 등은 경선 부정선거운동 시비, 민주당과의 단일화 등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두번째 고비는 2월말의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다. 수사결과가 이명박 당선자에게 불리하다면 신당은 기사회생의 계기를 잡을 수 있다. 이 당선자의 부도덕성을 집중공략, 총선에서 대반전을 노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무혐의로 굳어지면 신당은 역풍을 맞아 당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될 수 있다. 이 경우 범여권은 이합집산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신당은 지금 짙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상실한 모습이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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