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우리 정치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데카당'(decadent)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바뀌는 어간의 혼돈과 타락, 막연하나마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
거창하게 세기말 현상을 떠올린 걸 비웃을지 모르나, 어지러운 시대를 끝내는 소용돌이 주변이 소란스럽고 퇴폐적 양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비슷하다 싶다.
다가오는 시대의 모습을 가늠하기는 늘 어렵다. 그런 까닭 모를 불안과 자포자기 의식이 기성 가치와 윤리 등을 모두 벗어나 타락과 퇴폐에 빠져든 19세기말 유럽 데카당스 풍조의 바탕이었다.
■이런 감상을 부추긴 것은 '마이너' 후보들의 TV 토론 풍경이었다. 지지율 1%도 안 되는 후보들이 선관위 주관으로 공영방송을 통해 수천만 국민 앞에 나선 것을 비웃는 게 아니다. 옛 시골 약장수보다 못한 소견을 떠드는 것을 지켜보기가 참담할 지경이었다.
이마저도 민주선거의 단면으로 봐야겠지만, 수십 년 전 추억 속의 진복기 후보가 나을 듯했다. 과대망상, 자아도취, 노후도락, 사이비교주 등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이 21세기 대한민국 대선에 유례없이 대거 출마한 것이 우연일까. 기성정치가 실패하고 타락한 후유증이라고 본다.
■그날 퇴근 길 도심 교통은 유난히 막혔다. 광화문 네거리 '검찰 규탄대회' 때문이었다. 2002년 거리에 물결친 민중시위를 겉보기는 시민사회가 이끈 것과 달리, 대선 공식주자인 정동영 후보가 조직하고 앞장섰다.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속 시원히 밝혀 대선 판도를 단숨에 뒤집지 못한 것이 절통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 보이콧을 선언하면 모를까, 유세와 시위를 병행한 것은 구시대적이다. 나름대로 궁리한 최후 수단이겠지만, 거리와 차 속의 시민들은 말없이 무표정했다. 주먹 쥔 절규도 그저 퇴폐적 정치 쇼로 비쳤다.
■다음 날, 양쪽이 국회에서 검사 탄핵과 특검법을 놓고 육탄 대결한 것은 지겹도록 보아 온 꼴이다. 출입문을 걸고 여느라 쇠줄과 전기톱을 동원한 것이 돋보였을 뿐이다. 대선을 넘어 내년 총선을 노린 공방이라지만, 역시 변화의 불안에 겨운 엽기적 행태로 비친다.
국민을 배신한 정치가 온통 소외될지 모를 새 시대를 앞둔 탓에 저마다 무모한 데카당스 정치로 치닫는 듯하다. 그나마 훗날을 기약하려면, 너나 없이 누추한 얼굴을 쳐들고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기보다 조용히 마음을 씻고 행색을 가다듬어야 한다. 또 그게 도리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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