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의 본회의 처리를 하루 앞둔 16일 말 그대로 숨가쁜 하루였다. 대선 판도를 뒤흔들 만한 사안들이 잇따랐고, 여야간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진 끝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한밤중에 특검법 수용 의사를 밝힌 것.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둔 휴일 아침은 한 장의 CD가 정국을 뒤흔들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2000년 10월 원광대 특강에서 “내가 BBK를 설립했다”고 언급한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범 여권과 무소속 이회창 후보측은 한 목소리로 이명박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BBK와 무관하다’던 그의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이유였다. 그간 특검법에 소극적이던 민주당과 국민중심당마저 특검법 처리로 방향을 틀었다.
오후 들어 긴장의 파고는 더욱 높아졌다. 그간 침묵을 지켜온 노무현 대통령이 BBK 사건에 대한 검찰 재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검찰 수사결과에 대한 국민의 비판여론이 동영상 공개 이후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나라당은 청와대가 ‘이명박 죽이기’에 나섰다고 강력 반발했다. 반면 범여권과 이회창 후보측은 노 대통령의 방침과 무관하게 17일 특검법 처리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못박았다.
이런 가운데 후보들은 3차 TV토론에서 동영상과 특검법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이명박 후보는 “검찰 재수사 방침은 정치공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다른 5명의 후보들은 모두 그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같은 시각 국회에선 신당 보좌진과 상경한 한나라당 지방의원들 사이에 활극이 벌어졌다. 경찰 1,000여명이 국회 본청을 에워싸야 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반전이 있었다. 이명박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특검법 수용 의사를 전격 발표한 것. 그러나 단서가 있었다. “여야가 논의해 법과 절차에 따라 논의해달라”는 내용이다.
예상대로 범여권과 이회창 후보측은 이명박 후보의 특검 수용 입장을 비난했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꼼수”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17일 특검법은 당초 안대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전운(戰雲)은 여전하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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