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 후 여성 호르몬 대체요법(HRT)의 득실 여부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미국 텍사스주 샌 안토니오 시 곤잘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지난 13~16일 열린 제30회 ‘샌 안토니오 유방암 심포지엄’에서는 여성 호르몬 대체요법의 유용성에 대해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샌 안토니오 유방암 심포지엄은 매년 세계 각국의 유방암 관련 의사 8,000여명이 모여 주제발표와 토론을 하는 권위있는 의학 행사다.
흔히 호르몬 요법으로 불리는 HRT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든 폐경 여성에게 이 호르몬을 보충해주는 치료법이다. 폐경 후 여성에게는 일반적으로 얼굴이 타오르듯 붉어지거나(안면 홍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골다공증이 생기거나, 우울감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에스트로겐 보충은 이런 증상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2년 5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HRT가 유방암, 심장병, 혈전(피떡) 발생 등 부작용의 발생 위험을 25%나 높인다고 발표해 폐경 여성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같은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영동세브란스병원이 올해 폐경 여성 2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HRT 치료를 소홀히 하거나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샌 안토니오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한 영국 울프슨 예방의학연구소의 잭 쿠직 박사는 “미국의 경우 2001년부터 HRT를 30% 가량 줄여 2년 뒤에는 유방암 발생률이 13%나 줄어들었다”고 HRT의 위험성을 주장했다. 쿠직 박사는 특히 “HRT가 유방암 발생 위험을 1.7배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새로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생체의학연구소의 로완 크레보스키 박사는 HRT가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기존 연구결과와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했다. 크레보스키 박사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함께 사용하면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이지만 에스트로겐을 단독 복용하면 유방암 발병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오히려 발병율을 낮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샌 안토니오 심포지엄에서처럼 HRT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HRT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나오지 않아 폐경기 여성들은 유방암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치료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그냥 참아야 할지 괴롭기만 한 상황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경화 교수는 “폐경기 증상은 겪어본 여성이 아니고는 그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큰 위험 부담이 따르지 않을 정도로 HRT를 사용하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외과 한원식 교수는 “크레보스키 박사의 발표처럼 에스트로겐 단독 요법이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이지 않는다고 해도 10년 이상의 장기 복용은 위험하다”며 “특히 65세 이상 고령 환자는 심혈관 질환, 치매, 뇌졸중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교수는 “폐경기 증상은 보통 수년이 지나면서 점차 수그러들기 때문에 폐경이 시작되는 40~50대 여성에게만 저용량 에스트로겐을 4~5년 이하로 투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샌 안토니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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