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60)씨는 지난해 12월 담도암 수술을 받은 후 올해 6월까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받았다.
박씨가 병원에 낸 돈은 총 진료비 2,523만1,360원 중 969만5,470원.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1,553만5,508원을 제외하고 전체 진료비의 38.4%가 고스란히 박씨의 몫으로 돌아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달 발표한 11대 암 치료비 자료에는 본인부담금이 10% 안팎으로 돼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원인은 비급여와 선택진료료에 있다.
의료비는 크게 보험급여, 비급여, 선택진료료 항목으로 나뉜다. 박씨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된 보험급여 합계 1,735만원 중 환자가 181만여원을 내고 나머지를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했으니 보험급여에 대한 본인부담은 10%를 조금 넘는다.
여기까지는 정부의 말이 맞는다. 그러나 환자가 부담해야 할 것은 본인부담금뿐이 아니다. 박씨는 비급여와 선택진료료로 800만원 가량의 돈을 지불해야 했다.
먼저 비급여를 살펴보자. 비급여는 법정비급여와 임의비급여로 나뉜다. 법정비급여는 향후 급여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재정상의 이유로 아직 건보공단이 급여화하지 않은 항목이다.
초음파 진단료, 상급병실료 차액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임의비급여는 기준보다 더 많은 약이나 치료할 때 드는 비용으로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은 “임의비급여는 의학적인 근거가 없는 불법행위”라고 전제한 뒤 “기준을 넘어서는 치료가 효과적이라면 의료계는 그 근거를 제시해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거가 있어 약을 더 투여했고 효과적이었다면 당연히 기준을 현재보다 더 높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음은 선택진료료. 누구나 좀 더 실력 있는 의사에게 진료받기 위해 선택진료를 원하고 기꺼이 돈을 더 지불한다.
이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선택진료 신청서에 서명을 하고 나면 진찰료, 처치료, 수술료 외에 각종 검사에도 선택진료에 대한 비용이 청구된다.
유명한 의사 한 명을 보고 선택진료를 원한 것인데 각종 검사를 한 의사와 방사선 치료를 한 의사까지 ‘선택진료 패키지’에 포함된다.
선택진료라는 제도가 본래 건강보험제도 때문에 줄어든 병원의 수익을 보전해주려는 목적으로 생겨났다지만 이 부담을 환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비선택진료 의사들의 비율을 늘리겠다고는 하지만 병원들의 반발을 극복하고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영상진단, 의학관리, 마취, 방사선 치료 등 8개 항목에 대한 선택진료를 환자가 정할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에 법이 개정돼 선택진료 패키지 문제는 다소 해결될 전망이다.
정부의 대책에도 비급여와 선택진료료의 폐해는 계속될 전망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최근 민원인들의 진료비 영수증을 확인한 결과 3차 의료기관에서 암 등 중증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 40명의 본인 부담률은 48.7%에 달했다.
평균 총 진료비 478만1,284원 중 232만7,926원을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병원은 비용 청구를 위해 건보공단에 보험급여 자료만 제출하기 때문에 비급여가 얼마인지는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선택진료료 문제가 부분적으로 개선된다고 해도 질환별로 비급여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돼있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개선책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암 속설의 허와 실
대장암 검사는 누구나 40세부터 받으면 되나요?
아닙니다. 대장암은 50대 이후 주로 발생하지만 부계와 모계에 모두 대장암 환자가 있다면 유전성 대장암 위험이 매우 큽니다.
이런 경우 30~40대, 심지어 20대에도 암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직계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있으면 적어도 40세 이전에,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여러 명 있다면 더 일찍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 중 가장 어린 나이에 대장암 진단을 받은 사람의 나이보다 10년 일찍 받거나 25세 이전에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보세요.
대장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가족성 용종증 환자가 있으면 사춘기 전후해서 에스결장경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문의 국가암정보센터(1577-8899)
■ 부당 청구된 금액 돌려주는‘진료비 확인 심사제’
2003년 시작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확인 심사제도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납부한 ‘비급여 진료비’가 법령에 맞게 청구된 것인지를 확인해 불법 청구된 금액을 되돌려 주는 제도다.
감기라면 되돌려 받는 돈이 있다고 해도 얼마 되지 않겠지만 고가의 치료를 받는 암 환자에게 그 액수는 적지 않다.
지난해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치료받은 백혈병 환자들 중 환급 결정 내역을 통보받은 10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소 1,400만원에서 최대 4,000만원의 불법 청구가 발견됐다.
되돌려 받은 금액은 평균 2,500만원 수준. 사례별로 보면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항목을 임의로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해 환자에게 징수하는 경우가 75%로 가장 많았다.
강주성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여의도 성모병원처럼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데도 심평원에서 삭감될 우려가 있는 진료비를 환자에게 직접 징수하는 병원들이 다수 있다”면서 “나중에 들통나더라도 병원은 정식으로 공단에 청구해서 받아내면 그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청 허가기준에 맞지 않는 약과 치료 비용을 비급여로 환자에게 징수한 경우가 18%를 차지해 두 번째로 많았다.
여기에는 유방암 항암제 독성 제거용으로 식약청 허가를 받았으나 백혈병에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약을 백혈병 환자에게 처방하고 비급여로 환자에게 돈을 받은 사례가 다수 포함됐다.
보건당국은 환자들의 피해가 커지자 환자에게 부당한 비급여청구를 금지하고 단계적으로 비급여를 축소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 내년 상반기 중 입법화하기로 했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진료비 확인 심사제도는 국민건강보험법에도 나와 있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당연한 권리”라며 “건강보험료를 내는 의료 소비자로서 알권리를 챙기는 데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부 의사들은 “치료 당시 환자에게 ‘기준을 넘어선 치료이니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분명히 고지했음에도 치료가 끝난 뒤 진료비 확인 심사를 요청해 그 돈을 받아가는 등 제도를 악용하는 환자들이 있다”며 환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주성 대표는 “약을 더 투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면 기준을 바꿔야 하고, 그것은 전문인인 의사들의 몫”이라면서 “의료계는 셀 수 없이 많은 비급여 항목 중에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것이면 급여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진료비 확인 심사 인터넷 신청
홈페이지서 신청서 작성 후 영수증 첨부
진료비 확인 심사는 인터넷과 전화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www.hira.or.kr) 종합민원 메뉴에서 진료비 확인 요청을 클릭하면 신청서를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영수증을 스캔한 파일을 첨부하면 됩니다. 전화 접수는 심평원 민원상담부(02-705-6571~4)에서 받고 있습니다.
심평원은 확인 신청을 받으면 해당 병원의 자료를 받아 착오나 허위 청구 등 불법 청구가 있었는지, 진료비는 적정하게 받았는지 심사해 결과를 서면으로 통보합니다.
만약 심사 결과 불법 청구가 발견되면 해당 금액을 환자의 계좌로 심평원이 송금을 합니다. 전체 처리 기간은 보통 3~6개월 정도 걸립니다.
진료비 확인심사를 신청한 뒤 병원에서 ‘돈을 되돌려 줄 테니 심사를 취하해달라’고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법 청구가 여러 건 반복되면 그 병원은 집중관리대상이 돼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죠. 하지만 병원이 돌려준다는 금액은 심사 후 나오는 것에 비해 적으므로 취하하면 손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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