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이 달라진 것일까. 러시아가 핵프로그램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에 핵 연료 공급을 개시했으나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반응이 의외로 차분하다. 이란 핵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더 이상의 충돌을 피하려는 미국의 속마음이 읽혀진다.
17일 AFP통신 등은 러시아 국영 원자력 회사인 아톰스트로이엑스포르트의 발표를 인용해 이 회사가 전날 이란 최초의 핵발전소인 부셰르 발전소에 핵연료 1차분 공급을 완료했으며 이 핵 연료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하에 발전소의 특수 창고에 보관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이란 정부로부터 핵연료를 전력 생산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보증 문서를 받았다”면서 “핵연료 추가 공급이 내년 1월까지 수차례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란의 부통령 겸 원자력기구 의장인 골람 레자 아가자데는 이날 핵연료 도착을 확인하고 부셰르 발전소가 내년 5월 이전에 가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은 예상과 달리 차분한 반응이다. 두 나라는 러시아의 핵연료 공급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가 핵연료 재처리 물질을 회수하기로 한 이상 러시아의 핵연료 공급을 지지한다”면서 “이란 정부는 핵무기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이날 “이란이 핵연료를 현 수준 이상으로 개발하고자 시도한다면 평화적 목적 이상으로 사용할 의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 같은 형식적인 입장 표명에 머문 것은 러시아의 핵연료 공급 자체를 반대할 명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 러시아가 이란과 핵연료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하자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아야 한다”며 이란에 대한 핵연료 공급을 저지해왔다.
부시 대통령은 영국, 프랑스 등과 연합해 이란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경제 제재를 2차례 단행하기도 했다. 여기에 맞서 이란은 부셰르 핵발전소가 순수 민간용이라며 건설을 강행해왔다.
그렇지만 올해 8월 중립적 핵사찰 기구인 IAEA가 이란과 핵투명성 프로그램을 위한 일정에 완전 합의하면서 미국의 명분은 약해졌다. 미 중앙정보부(CIA)가 최근 보고서에서 이란이 2003년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핵연료 공급의 조건으로 이란이 받아들인 IAEA의 핵연료 처리 과정 참여 허용과 핵연료 재처리 물질의 100% 러시아 환수 등을 이란이 이행하는지 여부에 미국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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