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정성진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이 BBK사건을 재수사하도록 지휘권을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동영상 공개 파문을 보고 받은 뒤 이렇게 지시했다고 한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의혹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고, 동영상 공개로 의혹이 더욱 확대된 데 따른 것이라고 대통령 지시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지시가 아주 부적절할 뿐 아니라, 의혹 해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책임한 정치행위라고 본다. 대선 투표를 불과 사흘 앞두고 선거개입 논란만 부를 엉뚱한 지시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정치권이 BBK 수사와 특검법을 놓고 사생결단을 벌이는 판국에 엄정한 선거관리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정략적 행보에 법무부 장관을 끌고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개탄스러운 일이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전제한 것부터 부적절하다. 수사 발표 직후 청와대는 스스로 "검찰 수사에 대해 논평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대통령의 위임으로 검찰 업무를 감독하는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검찰 수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거듭 못 박아 말했다. 이런 터에 동영상의 의미 이를테면 수사 단서로서의 가치 등을 청와대가 판단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더욱이 법무부 장관에게 재수사 지휘권 발동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헌정과 사법 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모하다. 정치인이 아닌 법무부 장관에게 하루 아침에 소신을 바꾸게 하거나, 소신을 좇아 사표를 던지는 막다른 길로 모는 것과 같다
노 대통령도 이런 사리를 모르지 않는 듯, "국회의 특검법 논의를 감안해 국민이 신뢰할 가장 실효성 있는 조치를 강구하라"고 덧붙였다. 이게 도무지 말이 안 된다.
법무부 장관이 "지휘권 발동은 불가하다"고 하면 수용할 여지를 남긴 듯 하지만, 무책임한 정략적 행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어제밤 이 후보의 전격적인 특검 수용선언으로 노 대통령의 지시는 더 무색해졌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대선을 조용히 지켜보며 엄정 관리하는 것을 마지막 봉사 기회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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