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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엽관제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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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엽관제 망령

입력
2007.12.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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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1967~1845)은 선거제도 개선과 교육 확대 등 대중의 정치참여를 대폭 늘린'잭슨 민주주의'로 미국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런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1829년 취임 첫 연두교서에서 천명한'공직순환(rotation in office)'정책이다.

공직사회의 침체와 특권화를 막는다는 명분이었으나, 숨은 의도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서부 개척민들에게 공직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이로써 대선 승자가 요직을 독식하는 이른바 엽관주의(獵官主義)는 한동안 미국 정치의 한 원리이자 제도로 자리잡았다.

▦ 이 제도를 일컫는'spoils system'에서 spoils는 사냥감, 전리품을 뜻한다. 선거가 정치집단 간의 전쟁이고, 여기서 얻은 전리품, 즉 자리를 공헌 및 충성도에 따라 자파 세력에게 나눠준다는 취지다.

당시로는 이것이 양당제의 정신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장치로 인식됐다. 그러나 이 제도는 기본적으로 행정의 계속성과 일관성, 효율성과 안정성을 해치기 마련이다. 그 희생양은 20대 대통령인 제임스 가필드였다. 공공연한 매관매직과 정치부패의 만연에 분노한 한 젊은이가 취임 첫 해인 1881년 그를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 이 사건은 내막을 취재한 조지프 퓰리처의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며, 결국 미국 의회는 1883년 공직의 정치적 거래를 금지하는 입법을 하게 된다. 이후 공개적으로는 엽관제가 실적 및 능력주의에 밀려났으나, 그 전통과 관행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000사단''XXX마피아'등으로 불리는 점령군 세력은 오늘날까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참여정부는 이를'코드'로 포장했지만, 정당정치와 책임정치의 잣대로만 보면 엽관제의 필요성과 순기능도 있는가 보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 19일 대선을 앞둔 관가가 일손을 놓은 채 술렁이고 있다고 한다. 차기 정부에서 조직의 변화는 물론 개인의 거취도 불투명해서다. 야당 후보가 집권하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못지않게 또 한번 주도세력의 지형이 바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대선 이후'는 누구도 기약할 수 없지만, 정부조직과 인사에 대한 추측이 끊이지 않으니 어디에라도 줄을 대봐야겠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이미 조직통폐합에 대한 방어논리와 정책자료를 들고 장사를 벌인다고 한다. 엽관제의 낡은 망령 앞에서 떨고있는 사람들이 그저 안쓰럽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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