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삼성의 선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삼성의 선택

입력
2007.12.20 09:35
0 0

기자 생활을 하며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금융기관, 법조계, 의료계 등을 출입했다. 그 때 만난 취재원 중 삼성그룹으로 전직한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 유독 검사와 판사, 경제부처 고위관료 출신들이 많다. 함께 일하던 언론계 선ㆍ후배도 더러 있다. 하나같이 이른바 '힘있는 기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참여연대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삼성그룹이 과거 10년간 영입한 관료 출신은 101명, 법조계 인사는 59명에 달한다. 특히 법조계 인사 중 기업 비리 수사를 맡았던 특수부 출신을 포함해 검사와 판사 출신이 85%나 된다. 삼성은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회 각계의 우수인재를 영입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변호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기초자치단체가 50%를 넘는 우리 현실에서 수십 명의 판ㆍ검사를 돈으로 싹쓸이하는 행태를 많은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삼성에버랜드 수사 등 현안이 있을 때마다 관련 부처 고위 관료나 판ㆍ검사들을 대거 영입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민의 정부 이래 제주 4ㆍ3사건과 친일 반민족 행위, 정보기관의 고문조작 사건 등 우리 사회의 어두웠던 과거들이 하나씩 진실의 문을 열고 나오고 있다. 과거사 정리를 통해 국가의 틀을 바로 세우고 국가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다. 하지만 경제 분야만큼은 아직 구시대적 관행과의 단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은 정ㆍ관계, 법조계, 언론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권력이 연루된 구조적인 비리이다. 때문에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삼성이 새롭게 출발 하려면 우선, 국민적 의혹의 핵심이자 이번 사건을 촉발한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삼성이 시장권력을 뛰어넘어 국가권력과 사회적 담론 형성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무리수를 둔 것도 경영권 승계에 집착한 때문이다.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음성적 기업 관행을 고수해온 일부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둘째, 무차별적인 인재 '독식'을 멈춰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인재 영입이라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금융 회계 등 경영활동 자문에 필요한 유능한 변호사들이 많은데도, 특수부 검사나 공정거래위원회 고위관료 출신을 곧장 데려오니 '로비의 창구' '삼성의 방패막이'라는 의구심을 낳는 것이다.

셋째, 무노조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외면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노조는 경영 측면의 순기능도 분명히 갖고 있다. 만일 삼성에 건전한 노조가 있어서 경영진의 반칙과 탈법을 제대로 견제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삼성은 국내총생산의 18%, 수출의 21%를 맡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이다. 매출과 이익 규모는 이미 글로벌 기업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삼성이 지금과 같은 행태를 지속하는 한 글로벌 기업으로 영속하리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국민들은 이번에야 말로 삼성이 과거의 후진적 관행을 털어내고 진정한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려면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참회해야 한다. 수사기관 또한 이번 기회에 기업의 잘못된 경영관행과, 그것이 공직 부패로 이어지는 사슬을 끊어야만 한다. 국민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다.

고재학 경제산업부 차장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