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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바람을 닮은 詩의 감성… "쉽고 편안하게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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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바람을 닮은 詩의 감성… "쉽고 편안하게 들으세요"

입력
2007.12.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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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드 폴, 서른두살 조윤석의 이력서

서울대 화학과 졸업. 스위스 로잔 공대 생명과학 연구소 박사 과정, 그리고 스위스 화학회로부터 받은 최우수 논문상. 루시드 폴(Lucid fallㆍ 조윤석ㆍ32)을 음악으로 먼저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화려한 이력은 그를 이해하기에 걸림돌일지 모른다.

공학분야의 수재이면서, 동시에 시를 닮은 감수성이 가득한 음악을 짓는 원맨 프로젝트 밴드 루시드 폴. 영화 <버스, 정류장> 의 사운드 트랙을 비롯해 항상 가을을 닮은 음악을 선보여 온 그가 얼마 전 3집 <국경의 밤> 을 내고 연말 콘서트를 위해 잠시 귀국했다.

가냘픈 6현의 나일론 기타로 연주하는 어쿠스틱으로 초가을 저녁 무렵 볼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을 만나듯, 삶의 고통을 달래줄 것 같은 음악을 들려줘 온 그를 17일 만났다.

국내 언론은 최근 그의 논문상 수상 소식을 빠짐없이 다뤘다. ‘시인과 촌장’‘어떤 날’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인 모던 포크가수로 주목받은 재능과 함께 공학도로서의 능력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물론이다. 공학과 가수, 그것도 서정적인 포크. 비빔밥과 와인을 뒤섞어 놓은 듯한 혼합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매우 ‘문학’적인 가사로 사랑 받은 그가 답이 똑똑 떨어지는 공부를 한다는 게 언뜻 이해가지 않았다.

■ 공학과 포크음악, 기묘하고도 절묘한 조합

“포크가수와 공학도의 생활을 병행한 지 오래돼서, 두 직업을 함께 한다는 게 어떤지 잘 느끼지 못했어요. 노래를 만드는 것도 있지만 저는 프로듀싱도 함께 하는데, 감성적인 역할이 아니에요. 항상 의사결정을 해야 하죠. 세션을 어떻게 쓰고 편곡을 하며, 예스와 노를 바로 내놓아야 하는 위치라고 할까요. 그런 면에선 항상 답을 요구하며 미션에 매달리는 학업과 비슷해요. 사람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뮤지컬을 좋아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처럼요. 음악과 이공계 공부를 함께하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그는 2002년 스웨덴으로 유학길을 떠났다. 이후 스위스 로잔으로 옮겨 학업을 계속해 내년 5월이면 박사학위를 받는다. 공부와 음악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거듭 물었다.

“타고난 재능 얘기를 하는데, 사실 저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학부 시절에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에 유학 첫해에는 동기들을 따라가느라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죠. 주말, 공휴일의 80%는 쉬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어요. 외국 아이들이 이런 저를 약간 이상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천재요? 사실 저는 그 단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 3집 ‘국경의 밤’… 경계인의 미래와 사랑 이야기

이번 3집의 타이틀 곡이며 앨범명인 <국경의 밤> 의 의미가 궁금했다. 전체적으로 감상적인 연애를 화두로 담았던 이전 음반과의 차이가 느껴졌다.

“친한 친구 한 명이 2년 전 스위스에 놀러 와 한 달 정도 함께 여행하며 지낸 적이 있어요. 서로의 고민을 안고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 지대인 알프스를 차로 넘어가며 미래와 사랑에 대해 얘기를 했죠. 이후 그가 한국으로 돌아갔고, 기분이 묘했어요. 그때 그 국경에서의 밤이 자꾸 떠올랐죠. 중간자. 무언가 경계에 걸려있는 삶. 한국이 그립다가도 정작 돌아와서 답답함을 감지하듯. 난 경계에 서있다는 기분. 그런 감정으로 만든 곡이에요.” 공학도라는 직업과 음악인의 경계에 서서 때론 양쪽에 속했다는 기쁨이 있지만 돌아서면 혹시 어느 한 곳에도 제대로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에 휩싸인다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3집의 ‘사람이었네’등에선 음악적 관심사가 제3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이전의 루시드 폴이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과 여러 사회문제를 언급하는 음악을 해왔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리 특별할 것은 없지만, 그냥 남녀 간의 가벼운 사랑으로 기초공사 한 음악이 아니란 생각에 위안이 든다.

■ 무대와 실험실, 둘 중 하나만 택하라면…

그의 음악은 아쉽게도 대부분 슬프다. 슬픔의 감정에 가장 잘 듣는 약은 슬픔이라 하지만 그래도 조금 밝아질 수는 없을까. “슬픔이 기쁨보다 더욱 근원에 있는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기쁨은 한시적이죠. 그래서 기쁠 때엔 굳이 음악이 필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슬플 때엔 음악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너무 행복한 사람은 음악을 만들 필요를 못 느끼죠. 너무 슬픈 사람이 자연스럽게 음악을 찾습니다.”

루시드 폴의 음악은 익숙해지면 괜찮지만 처음엔 어쩐지 고급스럽고 너무 비싼 정찬을 앞에 둔 기분이 들게 한다. 그의 간단치 않은 경력이 머릿속에 오버랩 되면 더욱 음악을 어렵게 즐겨야 할 것 같은 편견이 생긴다. 고품격의 음악, 아니면 쉽게 다가가는 대중음악 중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루시드 폴의 음악이 어렵다는 말보다 쉽고 편하다는 반응을 원하죠. 쉬운 음악을 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있을까요. 여기서 능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는 고민이 많다. 음악 욕심이 크지만 내년이면 학업을 마치고 진로를 정해야 한다. 실험실에서의 그, 아니면 기타를 맨 루시드 폴이 선택될지 아직 자신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제 업은 음악입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공부를 하는 중이라 생각해요. 연구하는 일을 접을까라는 생각도 드는데, 아직은 모르겠네요.”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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