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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기름유출 대재앙/ 죽어가는 모래톱·갯벌·고기떼들아…미안하고 면목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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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기름유출 대재앙/ 죽어가는 모래톱·갯벌·고기떼들아…미안하고 면목없구나

입력
2007.12.1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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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엿새째다. 태안군 만리포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해상크레인이 충돌하여 1만500톤의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2007년 12월 7일 7시 30분. 모항리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달랐다.

바닷가 마을 특유의 신선한 아침 공기가 아니라 역한 석유냄새가 마을을 뒤덮었다. 이 지독한 냄새가 사람이 빚어낸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일 줄은 그날 아침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한나절이 채 안되어 검은 재앙은 마침 강하게 부는 서북풍을 타고 넘실대는 밀물을 따라 해안선을 덮치기 시작했다.

조상 대대로 태안땅에서 바다와 함께 산 우리는 경악했고 발만 동동 굴렀다. 시커먼 바다는 엿같이 끈적이는 액체를 고운 모래톱에, 갯바위에, 갯벌에 하역하고 또 하역했다. 머리가 아플 정도의 지독한 냄새는 바닷가 마을을 넘어 태안읍과 서산시까지 번졌다.

530.8㎞의 해안선이 그림같이 펼쳐진 태안의 바다. 국내 유일의 국립해안공원인 태안의 바다는 풍광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니다. 이 바다는 우리 가족과 친구, 친척들의 삶터이자 목숨줄이다.

고기들이 산란하기 좋은 모래톱이 있는가 하면 먹이가 풍부한 갯벌과 은신하기 좋은 갯바위가 조화롭게 형성된 태안의 바다는 어족자원이 풍족하기로 서해안에서 손꼽히는 바다다. 특히 올해는 꽃게와 대하가 많이 잡혀 오랜만에 뱃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는데 이런 바다가 인간의 부주의로 한순간 죽음의 바다로 변하다니.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가장 피해가 심각한 지역인 태안군 북부 해안의 아름다운 바다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밭고개라는 예쁜 별명을 지닌 소원면 모항항구와 서해안 최고의 만리포ㆍ천리포ㆍ백리포해수욕장. 도로변의 풍광이 동해안을 닮은 의항리수욕장과 구름포. 한창 굴 수확에 바쁜 소근진 갯벌의 굴밭.

어디 그뿐이랴. 수 만년을 두고 자연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놓은 원북면 신두리 사구와 구례포ㆍ학암포해수욕장. 이원면의 사목, 꾸지나무골해수욕장과 태안군 최북단에 위치한 만대의 바다가 눈물 속에 가물거렸다.

이제 인간과 공생하던 바다는 사라지고 죽음과 한숨이 가득한 바다만 넘실댈 뿐이다. 시커먼 기름덩이로 떡칠된 갯바위와 모래톱과 갯벌들에게 미안하고, 죽어가는 고기떼와 패류들에게 면목 없게 됐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바다의 온갖 생명들이 인간들에게 베푼 대가를 이렇게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울면서 바다로 나가 갯바위의 기름덩이를 닦고 웅덩이에서 바가지로 기름을 퍼내고 있다.

검은 재앙을 퍼내면서 그 속에서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이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름 가득한 늙은 뱃사람은 살아생전에 이 바다에서 고기잡이하기를 기대하며 기름바다로 나가 흡착포를 던지고 조개를 잡던 아낙네는 거친 손으로 조개 대신 끈적거리는 기름을 걷어내고 있다. 그들에게 2007년 겨울, 태안의 바다는 절망이자 또 다른 희망이다.

그나마 요 며칠, 잔잔한 바다 덕분에 태안의 남부지역이 극심한 오염에서 조금 비켜서게 됐고 따뜻한 겨울날씨가 방제작업을 도왔다. 하늘이 태안의 바다를 아주 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자원봉사자들의 힘도 크다. 그들의 걱정과 참여가 한평생 바다에 몸을 맡기고 산 갯마을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천재지변보다 무서운 인재와의 전쟁이 엿새째로 접어들었다. 이 엄청난 재앙과의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바다만이 알 것이다. 지금 태안의 바다는 인간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며 환경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시인ㆍ정낙추 사진 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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