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1990년 시작된 경복궁 복원사업의 마지막 관문인 광화문 복원공사 과정에서 태조 연간 지어진 최초의 광화문 유구(遺構)가 완벽한 모습으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현재 광화문 터 주변은 지하철 공사로 지반이 약해져 기초보강이 필요한데, 보강공사를 할 자리에 태조 때의 광화문 유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12일 고종 때 중건된 광화문 밑에서 발견된 태조 연간의 광화문 유구를 공개했다. 고종 2년(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든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태조 연간 광화문의 기초 위에 추가로 석재를 쌓아 축조한 것으로, 현재 세종로 아스팔트의 30㎝ 밑에 고종 연간의 광화문이, 그 70㎝ 밑에 태조 연간의 광화문이 위치해 있었다.
태조대 광화문은 문헌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지금까지 그 위치와 규모를 알 수 없었으나, 조사 결과 고종 연간 광화문과 그 위치와 좌향(坐向)이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전체 규모는 고종 때보다 동서로 4m, 남북으로 1.5m 더 작았다. 홍예문의 세 통로도 중앙문은 고종 때보다 약 15㎝ 작은 반면, 동문과 서문은 약 15~20㎝가량 더 넓었다. 고종 연간에는 출입문이 통로의 남쪽 입구에 있었던 것과 달리 창건 당시에는 통로의 한가운데 설치돼 있었던 것도 다른 점이다.
문제는 고종 연간의 모습을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 복원 공사에 지반 강화를 위한 보강 공사가 필수적이라는 점. 광화문 복원을 위한 기초구조 안전성 연구 결과, 복원 위치 주변에 지하철 5호선 상ㆍ하행선 터널이 지나가면서 토층이 교란, 지반이 위치에 따라 80㎝~3m로 제각각 두께가 다른 등 매우 불안전한 상태다.
이를 위해 광화문 복원공사의 연구 용역을 맡은 한국건설안전기술원은 총 150㎝ 높이의 태조 연간 유구 중 상부 48㎝ 정도를 들어낸 후 철근 콘크리트를 쌓고 그 위에 광화문을 세우는 방법을 가장 바람직한 공법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이 경우 태조 때 광화문 유구를 훼손해야 한다는 데 문화재청의 고민이 있다.
문화재청은 후대를 위해 태조 연간 유구를 그 자리에 온전하게 보존한 후 그 위에 광화문을 세우는 것을 제 1안으로 삼고 있지만, 안전 상의 문제로 여의치 않을 경우 제 3의 장소에 이전해 전시하는 방안, 강도가 약한 일부 부재를 덜어내고 나머지 부재를 활용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
엄승용 문화유산국장은 “태조 연간 광화문의 존재는 누구도 예상 못한 새롭게 제기된 문제”라며 “문화재 자문위원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은 후 내년 2월까지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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