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김용철 변호사의 이름을 도용해 삼성에게 비자금 계좌를 만들어 준 것은 단순한‘금융실명법 위반’이상의 씁쓸함을 던져준다. 물론 삼성을 최고 VIP로 모시는, 삼성센터 내부의 은행지점 입장에서‘서비스가 과했다’고 쉽게 넘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소유 금지)’폐지를 앞장서 주장해 온 삼성 스스로가 금산분리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보여줬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금산분리 폐지론자들은“재벌이 은행을 소유하더라도 사금고화 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경영이 가능할 만큼 우리 경제와 금융계가 성숙했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우리은행과 굿모닝신한증권은 거대 고객인 재벌을 위해 불법까지 서슴지 않은 후진적인 관행이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차명계좌를 만들어줬을 뿐만 아니라, 돈세탁이나 불법자금으로 의심되는 2,000만원 이상의 자금거래에 대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혐의거래를 보고해야 할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 은행은 기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신용도를 정확히 구분해 대출을 해주고, 모기업과 투명하게 거래를 할 수 있을까?
삼성의 계열사인 삼성증권을 보면 답은 더욱 분명해진다. 삼성은 은행처럼 계좌 개설이 가능한 계열 증권사를 동원해 현재 검찰이 파악한 바로만 1,500~2,000개의 차명의심 계좌를 운영했다. 말 그대로‘사금고’인 셈이다.
금산분리가 금과옥조와 같은 불변의 원칙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삼성의 비자금 사태는, 그리고 거기에 동원된 삼성증권과 우리은행 굿모닝신한증권의 행태는 그간의 금산분리 폐지 주장이 우리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이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진희 경제산업부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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