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동안 한국과 중국을 무시로 넘나들며 빡빡한 대국 일정을 용케 별 탈 없이 소화해 냈던 이세돌이 이번 주에 열리는 ‘KB국민은행 2007 한국바둑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또 한 차례 절묘한 ‘겹치기 출연’ 묘기를 펼친다.
이세돌의 소속팀 제일화재는 지난 주 벌어진 준플레이오프에서 울산디아채를 3대1로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진출, 14일부터 16일까지 정규 리그 2위팀 신성건설과 챔피언 진출팀을 가린다. 플레이오프는 단판 승부이므로 자기 팀에서 가장 믿을 만한 선수를 앞쪽으로 배치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10일 발표된 양팀 오더를 보자. 신성건설은 역시 정석대로 홍성지 조한승 목진석으로 이어지는 ‘쓰리 톱’을 전진 배치했는데, 제일화재는 뜻밖에 이세돌을 맨 뒤로 돌리고 대신 김주호 조훈현 진동규를 앞세웠다.
웬일인가? 알고 보니 공교롭게도 이세돌의 중국 리그 소속팀인 꾸이저우에서 15일에 베이징에서 열리는 경기에 꼭 출전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왔기 때문이라는 것.
이세돌은 올해 중국 리그에서 꾸이저우팀의 주장을 맡아 창하오 후야오위 구리 콩지에 등 강자들을 모두 격파하면서 7승3패를 기록, 꾸이저우가 1위를 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지난 한 달동안 LG배와 삼성화재배 및 국수전 GS칼텍스배 도전기 등 국내외 기전 일정이 폭주해서 이세돌이 중국리그에 출전하지 못하자 꾸이저우의 성적이 나빠지면서 1위 유지가 위태로워졌다.
중국리그는 총 22라운드 가운데 20라운드가 진행돼 종반에 접어든 상황이다. 현재 꾸이저우가 승점 43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긴 하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창하오가 이끄는 상하이팀이 42점으로 바짝 뒤쫓고 있는데다, 15일은 3위인 신흥지산팀(승점 40점)과의 경기여서 꾸이저우로서는 절대로 져서는 안 될 매우 다급한 상황.
이세돌로서는 물론 한국바둑리그도 중요하지만 용병으로 뛰고 있는 처지에서 꾸이저우팀의 ‘구원’ 요청을 선뜻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14일에 베이징으로 날아가 15일에 중국리그 경기를 치르고 다음날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와 저녁 7시부터 열리는 한국바둑리그 플레이오프 제5국에 출전키로 결정한 것.
정규리그 때도 그런 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제일화재가 마지막 경기까지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3패를 해서 이세돌이 출전도 하지 못한 채 승부가 결정 나는 불상사가 벌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것. 정규 리그 때라면 모르지만 단판 승부인 플레이오프에서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제일화재로서는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세돌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상 수단을 택했다”며 “감독님과 팀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어떻게든 끝까지 버텨준다면 마지막 판에 꼭 이겨서 팀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말했다.
뜻밖에 어려운 상황을 맞은 제일화재 이홍렬 감독은 “우리 팀은 안달훈ㆍ서건우가 시즌 중에 잇달아 입대하는 등 악재가 겹쳤지만 선수들이 잘 버텨 주고 있다. 준플레이오프 때도 이세돌이 첫 판에서 졌지만 조 국수를 비롯, 다른 선수들이 더 힘을 내서 역전승을 거두었으므로 이번에도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신성건설 양재호 감독은 “이유야 어쨌든 상대팀 에이스가 스타팅 멤버에서 빠진 것은 우리 측에 엄청난 호재“라며 “나머지 선수들은 우리 팀이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앞서고 있으므로 막판까지 가기 전에 반드시 끝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과연 이세돌이 ‘겹치기 출연’에 성공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 이번 플레이오프의 새로운 관심거리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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