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단골 고객이던 남미의 신흥 석유 강국들이 ‘남미은행’을 독자적으로 창설, IMF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일달러 등으로 경제 회복에 자신감을 회복한 남미 국가들이 미국 중심의 IMF, 세계은행(World Bank)과 결별하고 지역경제 부흥을 위한 독자적인 재정확보에 나서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AP, AFP 등 외신들은 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6개국 정상들이 모여 남미은행 출범 결의안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7개 회원국 중 타라베 바르케스 우루과이 대통령은 이날 불참했다. 칠레, 콜롬비아, 페루, 수리남, 가이아나도 조만간 참여할 것으로 보여 남미은행은 남미 12개국 전체를 회원국으로 둔 명실상부한 지역금융기구로 발전, 남미통합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출범식에서 회원국 정상들은 출범 의의에 대해 IMF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남미은행은 남미가 IMF, 세계은행 등의 부정적인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범했다”고 말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IMF의 정책은 남미에 빈곤과 폭력 등을 가져온 ‘저주’였다”면서 “IMF에 대한 의존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미은행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본부를,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볼리비아 라파스에 지부를 개설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에 앞서 회원국들은 70억달러의 자본금을 마련하고 운영위원회를 구성, 은행의 성격과 역할, 운영방식 등 세부사항을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회원국들의 의견이 상충되고 있어 앞날이 순탄치만 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남미은행의 역할에 대한 입장 차이다.
베네수엘라는 남미은행이 IMF를 완전히 대체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브라질은 기존 국제금융기구와 보조를 맞추며 회원국의 경제 개발을 위한 인프라 확충을 지원하자고 주장한다. 양국은 자본금 출자 방식에 대해서도 균등부담 방식과 차등부담에 따른 의결권 행사의 차이를 두자는 의견으로 맞선 상태다.
남미은행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려는 움직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차베스 대통령이 남미은행의 출범을 주도한 사실을 두고 일부 회원국에서는 자국의 오일달러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좌파가 집권 중인 회원국들도 은행 운영에 정치적 입김을 불어 넣을 가능성이 높다. 회원국 간 고질적인 갈등도 해결이 쉽지 않다. 바르케스 우루과이 대통령이 출범식에 불참한 이유도 아르헨티나가 접경지대에 건설한 대형 펄프공장 가동으로 인한 양국간 갈등 때문이었다.
남미은행 출범에 대한 서방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폴 블루스타인 IMF 감독관은 “수십년간 혹독한 금융구제를 받아온 남미 국가들이 (금융) 자율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면서도 “IMF와 대결할 만큼 성공적인 기구로 성장할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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