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10주년을 맞은 서울시극단이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내부를 새로 단장한 ‘세종 M 씨어터’에서 최인훈 작, 이윤택 연출의 <달아달아 밝은 달아> 를 공연 중이다. 달아달아>
10주년을 자축하는 이번 공연 <달아달아 밝은 달아> 는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 감각을 고민해 온 극단으로서는 탁월한 레퍼토리 선정이었다(예술감독 신일수). 달아달아>
창단 공연 <아버지> 로 시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시민연극’ 시리즈를 통해 시민윤리의 함양 및 정통고전극으로 차별화를 꾀했던 극단이 10년을 맞아 관립 단체라는 폐쇄적 틀을 벗어나 쇄신을 꿈꾸는 듯하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는 이윤택과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배우들, 스태프진을 적극 끌어들여 작품의 색깔을 선명히 빚어냈다. 달아달아> 아버지>
한 세대 전에 발표된 최인훈의 희곡은 심청이 간 ‘용궁’을 중국 색주가의 환유로 읽은, 당시로는 매우 도발적인 발상과 뒤집기를 담은 심청전의 패러디물이다.
이윤택은 이번 공연에서 세계화 시대 민족의 운명에 대한 우화적 사색을 담는다. 연출가는 희곡이 묻어놓은 행간을 확장해 러시아, 중국, 일본 주변국가에 의해 처참히 유린된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요약한 비유담으로 풀어낸다. 이로써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떠도는 이 세상 모든 심청이의 넋을 건지는 자리가 되었다.
무대 기호들의 사용에서 전통과 현대가 과감히 섞여들고, 한ㆍ중ㆍ일의 시각적 이미지들의 절충적 변용이 활달하다(무대미술 이순종). 신용불량자에게 들이닥친 세리 집행관 모습으로 저승사자가 심봉사를 방문하고, 도화동 공간에서는 팝아트처럼 거대한 플라스틱 복숭아꽃이 덜렁 놓인다.
심청이 가슴에서 내려놓지 않던 서책, 고향을 떠나며 품은 식은 감자 한 알, 전족에 빗댄 맨발에 감긴 붉은 천, 성적 예속을 한눈에 가시화한 철제 새장의 사용 등 인물이 처한 상황의 비극적 정서를 물질성으로 바꿔놓는 연출력이 정확하다.
귀향길 해적에게 다시 탈취돼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심청의 몸을 허수아비 놀음 엮듯 사물화한 장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만남을 연상케 하는 한양으로 이송 중인 이순신 장군이 탄 수레와 심청이 마주치는 장면, 온후한 달빛이 세계의 폭력성 앞에서 제 빛을 까맣게 잃고 마는 월식 장면 등 뛰어난 형상화로 원작의 탄탄한 원형질에 보답한다.
연극은 ‘문화가 있는 도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그 몫을 계량화해서 내보일 수는 없지만 우리 가까이서 연극이 건네는 한 줌의 신명, 한 줌의 치유, 한 줌의 아름다움을 손잡아 누릴 수는 있을 것이다. 16일까지.
극작ㆍ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