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사고가 발생한지 닷새가 됐지만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사고 원인 규명은 제자리 걸음이고, 사고 책임소재를 둘러싼 논란만 무성할 뿐이다.
충남 태안해양경찰서는 11일 사고 당일 유조선과 충돌한 크레인을 이끌었던 예인선 선장과 관계자 20여명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벌였지만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과실을 전면 부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직전 관제실과 예인선 간에 유조선 충돌 위험에 관한 교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사고 당시 교신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입수해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뾰족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수사가 답보를 거듭하면서 유조선 예인선 관제실 간의 책임 공방도 되풀이되고 있는 양상이다. 현재로선 어느 한쪽도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보더라도 어느 쪽이든 한 군데서 적절한 조치만 취했어도 1만kl이상의 원유가 유출되는 최악의 해양 오염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사고는 해상에 있던 예인선과 크레인을 연결한 쇠줄이 끊어지면서 크레인이 떠내려 와 근처 유조선을 들이받으면서 일어났다. 당시 3m가 넘는 파도가 치고 초속 10~14m의 강풍으로 직경 50㎜가 넘는 쇠줄이 끊어졌지만, 예인선이 떠내려간 크레인을 유조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본체로 밀어냈더라면 충돌이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가오는 크레인을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제대로 피하려 했는지도 의문이다. 대산해양수산청 관제실은 사고 2시간 전부터 유조선과 예인선 측에 경고 교신을 내렸지만 유조선은 "대형 닻을 올리고 시동을 걸어 이동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경고를 무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산해양수산청은 초단파(VHF) 무선을 통해 예인선에 비상 상황을 제대로 알렸는지, 또 풍랑주의보가 발효중인 상황에서 3,000톤이 넘는 거대 크레인 운항을 왜 허용했는지 등에 대한 책임 추궁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경찰은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문점들을 토대로 참고인 조사와 물증 분석을 병행한 뒤 조만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태안=박원기 기자 o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