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주가가 곤두박질 치던 올 8월 중순. 대우증권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을 비롯한 3명의 애널리스트들이 1주일 전후로 연달아 '사죄 리포트'를 냈다. 예견했던 종합주가지수나 담당 종목이 폭락했으니 용서해달라는 것. 국내 증시풍토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어쨌든 이들의 집단 사죄는 올 증시가 얼마나 예측불허로 움직였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사실 미래를 예측하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일로 남의 돈을 순식간에 날릴 수도 있다면 가히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할 것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여느 해보다 주가가 널뛰었던 올해 증권맨들에겐 '천당에서 지옥' 혹은 '지옥에서 천당'을 오간 한 해였다. 국내 대표 증시전략가(스트래티지스트)들이 말하는 2007년을 되돌아봤다.
1990년부터 애널리스트 생활을 시작한 대우증권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은 자칭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낙관론자'다. 그는 "2001년 9ㆍ11사태 이후 줄곧 국내 증시의 저평가가 곧 해소될 거라 외쳤는데 올해 비로소 현실화됐다"며 "그런 점에서 2007년은 내게 무척 고마운 해"라고 회상했다.
그가 지난해 말 점쳤던 올해 지수 최고치는 1,850. 다른 시장분석가들에 비하면 낙관적 전망이었지만, 실제 증시는 그의 예측보다도 훨씬 낙관적으로 돌아갔다. "2,3년 전 현대중공업이 3만~4만원 하던 시절 조선주를 추천했는데 그 때는 들은 체도 안했던 고객이 올해 대뜸 찾아와 그런 종목 다시 내놓으라고 떼를 쓰더군요."
2004년부터 대세상승을 예견한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 역시 올해 최고치를 1,670으로 봤다가 체면을 구겼다. "이렇게 오를 줄 몰랐죠. 1,700선쯤 갔을 때 과열이라고 신호를 보냈는데 바로 2,000을 넘더군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중국증시의 성장세를 잘못 짚었던 셈이죠."
연초에는 주가하락을 점쳤던 김영익 당시 대신증권 센터장과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대신과 신영증권이 같은 건물을 쓰는데 4월쯤 펀드매니저 설명회에서 주가상승을 역설했더니 '한 건물 쓰는 분들 의견이 정반대니 건물이 제대로 붙어있겠냐'며 비꼬더라"고 전했다.
'증권가의 족집게'로 유명한 하나대투증권 김영익 센터장은 올해 빗나간 예측 때문에 아예 시각 자체를 수정했다. 대부분 '고(go)!'를 외치던 2분기 1,250까지 주가가 조정받을 것으로 예상했다가 주가가 거꾸로 급등하자 곤욕을 치렀다. 쌓아온 명성은 무너졌고, 한동안 '미스터 1250'이라는 오명까지 생겼다.
이후 그는 낙관론자가 됐다. 그는 "우연히 만난 은행PB에게 '당신의 전망을 믿고 고객에게 매도를 권했다 얼굴도 못든다'는 말을 들은 뒤 수년간 써 왔던 예측 모델을 수정했다"며 "2분기 전망이 빗나갔을 때 빨리 고치지 못한 게 가장 안타깝다"고 회상했다.
요즘은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히지만 사실 연초만 해도 교보증권 이종우 센터장은 낙관론자에 가까웠다. 선진국 수준의 주가 상승률을 예상하고 최고치 1,600을 제시했지만 하염없이 오른 주가가 1,800을 넘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는 "20년 증권 경력에 익혀왔던 숱한 계산법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주가였다. 99년 IT거품처럼 올해도 중국 바람을 타고 주가가 과대포장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센터장의 비관론은 올해가 두번째. 2000년 모두가 연말지수 1,500을 점칠 때 홀로 '하락'을 예견해 결국 맞췄지만 그 때도 "당신 생각대로 주가가 빠져 행복하냐"는 조소는 면하지 못했다. 그는 "낙관론이 틀리면 욕 한번으로 끝나지만 비관론을 잘못 펼치면 시장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안 좋은 걸 좋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반문했다.
연초 시장을 낙관적(1,750)으로 봤던 삼성증권 김학주 센터장은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크라이슬러가 채권 발행에 실패한 것을 보면서 관점을 바꿨다. 그는 "그때까지 찻잔속 태풍으로 여겼던 서브프라임 사태를 다시 보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가 보는 내년 최고치는 '고작' 2,020. 다른 분석가들이 2,400을 내다보는 것에 비하면 그는 신중론자다. 내년에 오를 이유가 이미 올해 반영됐기 때문이란다. "비관적인 전망 때문에 영업점에서 펀드를 팔 수가 없다는 하소연을 들으면 한없이 미안하지만 분석결과와 다르게 투자자를 오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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