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제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확산되면서 입시전문가를 중심으로 “2008학년도 대입전형이 파행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등급제 개선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1점 차이로 당락의 희비가 엇갈리는 ‘수능 올인’ 현상을 개선할 경우 고교교육 정상화에 도움을 주고 사교육 의존도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게 교육인적자원부 판단 이었지만, 낙관적인 결과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수험생들의 혼란 외에 등급 약점을 논술 등 대학별 고사로 보완하려는 수험생들이 논술전문학원 등 입시기관으로 대거 몰리면서 사교육이 때아닌 활황을 맞고 있다.
■ 등급제, 애물단지 된 이유는
수능 등급제 논쟁의 핵심은 변별력 확보 여부라고 할 수 있다. 비판론자들은 등급제 도입으로 수능의 변별력이 크게 약화해 수험생들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 등은 대학들의 전형요강에 비판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주요 대학들이 당초 수능 등급제 취지와는 달리 내신실질반영률을 낮춰 대입 전형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8월 고려대(17.96%) 등 서울 주요 사립대 7곳은 교육부의 내신 실질반영률 30% 방침과 달리 20% 내외로 결정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등급제는 내신 반영 비중 확대를 전제로 한 제도”라며 “주요대가 내신실질반영률을 낮추면 등급제 도입의 의미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내신 비중을 의도적으로 낮추기 위해 등급간 점수를 0.5~2점만 적용해 사실상 수능 등급제를 무력화 시켰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학들은 다른 논리로 맞서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고교·지역별로 학력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내신을 강화하라는 교육부 지침은 우수 학생을 뽑지 말라는 말과 같다”고 잘라 말했다.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와 비평준화 지역의 우수고교 출신 학생을 일반 고교 출신 학생과 동일선상에서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대입전형이 완료되는 내년 2월 내신실질반영률이 낮은 대학들에게 행ㆍ재정적 제재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엄포 수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수리 '가' 난이도 조정 실패 논란
자연계 학생이 주로 선택하는 수리 ‘가’의 난이도 조정 실패 논란도 수능 등급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의 입시기관은 수리 ‘가’의 1등급 구분점수(커트라인)를 98점으로 예측했으나, 2점짜리 공통문제 하나만을 틀린 수험생도 2등급인 것으로 알려져 1등급 구분점수가 사실상 만점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문제만 틀려도 최상위권 대학 자연계 학과나 중상위권 대학 의예과, 약학과를 지원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 입시기관 관계자는 “1등급과 2등급이 한 문제로 갈리는 것은 수험생들에게 너무나 가혹하다”며 “등급별 분포비율이 적정하다 해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와 수능 출제 및 채점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리 ‘가’의 등급별 분포가 표준분포비율에 근접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의 혼선을 덜기 위해 영역별 등급 구분점수와 수험생별 원점수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등급제 취지에 어긋나 불가능하다”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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