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보다 우울한 뉴스가 많았던 2007년 극장가. 가장 나쁜 소식은 사람들이 예전만큼 영화를 ‘안 본다’는 사실이다. 극장수는 늘었지만 관객수는 11년 만에 오히려 줄었다.
영화인들은 돌아선 관객의 마음을 붙잡으려 온갖 묘수를 짜냈지만 대부분 허사였다. 스타의 얼굴을, 유명 감독의 연출력을, 전작의 인기를 내세운 영화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뜻밖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들도 있다. 눈에 띄는 스타도, 이슈가 될 법한 마케팅도 없이 조용히 대박을 터뜨렸다. 이 영화들이 관객을 끌어당긴 힘은 무엇이었을까.
■ '그놈 목소리' 스릴러, 진한 드라마를 만나다
올 상반기 개봉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은 박진표 감독의 <그놈목소리> . 325만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실제 있었던 유괴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범죄 스릴러로 흥행 공식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였다. 유괴유괴범의 정체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스릴러에서 기대되는 영상적 충격도 그리 세지 않았다. 그놈목소리>
대신 영화를 채운 것은 진한 드라마.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절절 끓는 마음을 두 배우(설경구, 김남주)가 훌륭히 소화해 냈다. 진저리를 치게 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범인의 매력, 곧 <살인의 추억> 에 대한 관객의 추억을 자극한 것도 한몫했다. 살인의>
■ '극락도 살인사건' 코믹·호러 어울린 조밀한 스토리
<극락도 살인사건> 은 정통 스릴러에 가깝다. 이것 역시 대박과는 한참 떨어진 장르. 그러나 조밀한 스토리는 입소문을 타고 영화팬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코믹과 호러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맛, 속도감 있는 전개와 아귀가 맞아 들어가는 시나리오의 촘촘함이 200만명이 넘는 관객을 극락도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극락도>
■ '식객' 역시 허영만… 탄탄한 원작의 힘
하나도 없었다. 티켓 파워를 가진 톱스타도, 골수팬을 거느린 감독도, 평단의 찬사도 없었다. 그런데도 가을 이후 개봉한 영화 중 나란히 흥행 1, 2위를 기록 중이다. 11일까지 두 영화를 관람한 관객수는 각각 290만명, 216만명.
<식객> 의 주연배우 김강우, 임원희, 이하나는 ‘스타’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엔 중량감이 떨어진다. 시사회 후 언론과 평론가의 반응도 싸늘했다. 하지만 원작에 뿌리 내린 단단한 기대감이 그것을 넘어 섰다. 허영만이라는 이 시대 최고 이야기꾼의 이름은, 이 영화가 ‘200만’이라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허들을 가뿐히 뛰어 넘게 만들었다. 드라마 <대장금> 에서 쏠쏠한 재미를 본, 형형색색의 음식들은 관객에게 주는 서비스. 대장금> 식객>
■ '바르게 살자' 독특한 스토리, 이런 영화 처음이야
‘장진’(제작, 각본) 브랜드를 달고 나온 <바르게 살자> 도 흥행 성공을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는 여자> <웰컴 투 동막골> 등에서 보여준, 피식 웃음이 나게 만드는 ‘장진표’ 허허실실 유머도 약했다. 그럼에도 예매율 1위의 영광을 몇 주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독특한 스토리. 설령 엉성하더라도, 경험한 적 없었던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관객의 요구에 이 영화가 ‘꽂혔다’. 웰컴> 아는> 바르게>
■ '원스' 여성 감성 제대로 자극한 ‘연기 초짜들’
19만과 10만. 상업영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들은 ‘쫄딱’ 망했다. 하지만 ‘인디’라는 수식어가 붙는 영화라면 얘기가 다르다. 수입단가와 개봉관수를 생각하면, 이 두 영화의 흥행기록은 ‘초, 초, 초 대박’이다. 개봉 일주일만 지나도 스크린 수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이 영화들은 개봉 수개월이 지나서 오히려 상영관을 늘리는 ‘괴력’도 발휘했다.
습윤한 분위기가 감도는 아일랜드 거리, 연기라곤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 배우들, 1억원 남짓한 초저예산. 이 조합이 어떻게 한국 20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몽환적이지만 사변적이지 않은 스토리, 어쿠스틱한 감성에 목마른 관객의 존재를 이 영화가 확인케 했다.
■ '우리학교' 진지한 시선은 아직 살아 있다
일본 훗카이도의 조선인 학교를 담은 다큐멘터리 <우리학교> 의 흥행은, 영화를 통해 세상의 진면목을 보려는 시선이 남아 있음을 보여줬다. 우리학교>
개봉 일주일만 지나도 스크린 수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원스> 와 <우리학교> 는 개봉 수개월이 지나서 오히려 상영관을 늘리는‘괴력’도 발휘했다. 우리학교> 원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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