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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후보가 그것도 모르나?"

입력
2007.12.1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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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젊은이가 영주(領主)의 식객으로 입문했다. 밥을 먹여주는 대신 유사시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가신(家臣)의 무리가 됐다. 새벽부터 무술 연마가 이어지고, 밤 늦도록 집안일을 익혀야 한다.

수많은 봉건 영주가 각축하던 시절, 그러나 그 젊은이는 무술과 집안일에 무관심했다. 요즘 말로 민심 파악과 정국 추이에 더 관심을 가졌다. 자연히 그는 '왕따'를 당했고, 심지어 그를 베어 버리자는 동료들도 많았다.

■ 대장과 부하는 관심사가 달라야

영주가 그를 불렀다. "너는 왜 무술공부, 집안일도 하지 않느냐." 주인의 질책에 그가 답했다. "제가 열심히 한들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힌 무사들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태어난 집사들보다 어찌 더 능숙하게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출중한 기술을 연마한 무사를 고용하고, 훌륭하게 살림을 꾸릴 집사를 찾아 쓰면 족할 것입니다. 대장이란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여 이들을 잘 부리는 것이 소중하다 여깁니다. 저는 대장이 되고 싶습니다."

한반도를 침략했던 왜적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이야기라 좀 뭐하지만, 생각할 것은 많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가 살벌한 경쟁에서 승리하여 일본의 '대장'이 되기까지 큰 전환점이 되었던 일화다. 젊은이는 자신을 알아 준 그 영주의 배려로 동료들로부터 '베임'을 당하지 않고 '대장 수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공식적인 TV토론회는 물론 많은 언론매체가 갖가지 명분으로 이들을 불러내 질문들을 쏟아 붓고 있다. 선거가 불과 1주일 남았지만 그러한 질문과 답변은 여전히 유익하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다.

한 나라의 '대장'으로서 사안에 대해 어떤 인식과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판단할 자료는 많지 않고, 기억력이나 테스트하려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지식이나 기예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상징적인 예로, "요즘 서울 시내 버스요금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라는 질문에 "현금으로 내면 1,000원, 카드를 쓰면 900원"이라고 대답한 후보와 "글쎄, 1,000원인가, 1,100원인가…"라며 얼버무린 후보가 있다고 치자. 앞의 후보는 서민경제에 관심이 많고, 뒤의 후보는 서민생활에 무심한 후보인가.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버스요금도 모른다"고 빈축을 안길 게 아니다.

그것은 관련 공무원이 정확히 알아야 할 일이고, 후보라면 서민의 가계지출을 줄이는 데 비중을 둘 것인지 교통체계 합리화에 신경 쓸 것인지에 대한 소신을 밝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또 다른 예로, "우리 국민이 테러집단에 피랍되었을 때 어찌 하겠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후보들은 "외교력을 강화해 미연에 방지하겠다"거나 "인질들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당연한 대답을 했다. 사회자가 거듭 "구체적으로 답변해 달라"고 재촉하자 특수부대를 동원하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형국이 됐다.

위험에 처한 인질들의 소중한 생명을 중시하느냐, 제2의 사태를 막기 위해 테러와의 협상 불가를 고수하느냐 하는 철학을 살필 수 있는 대화였어야 했다. 시행과 집행은 유능한 외교관과 용감한 군이 가장 잘 알아야 할 일이다.

■ '철학과 소신' 잣대로 지지 결정

한 명의 후보를 불러 무차별식 질문을 던지는 것은 더욱 그렇다. 대통령 후보가 소속 정당과 참모들이 만들어낸 100여 가지 공약과 정책을 다 알고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시시콜콜히 다 외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마치 골든벨 프로나 퀴즈풀이 진행에서처럼 인용하고 물어 '무심함과 무식(?)'을 부각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유권자의 눈을 가리는 역효과를 낳는다.

대통령이 공약과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인 관료나 참모들이 정확히 파악하고 집행하면 될 일이다.

그러한 공약을 왜 내놓았고, 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에 대한 소신과 철학을 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권자들이 '대장'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도 마땅히 그것이 되어야 한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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