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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허망하게 무너진 12년 공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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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허망하게 무너진 12년 공든탑

입력
2007.12.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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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기름유출사고… 장비ㆍ지휘체계도 엉망' '초동대처 못해 피해 확산'

서해 태안앞바다를 '사해(死海)'로 만든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 얘기가 아니다. 12년 전인 1995년 7월 여수앞바다를 검게 물들인 유조선 '씨프린스호' 좌초 사고 당시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들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2007년 12월 서해에서 일어난 이번 사고에서도 똑 같은 제목의 기사가 등장하고 있다.

두 사고 모두 유조선이 근해에 정박해 있다가 발생한 점이나 사고가 난 후 당국이 우와좌왕하고 지휘체계가 일원화하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도 판박이다. 오히려 씨프린스호 사건때에는 태풍이라도 불었지만, 이번에는 100% 부주의탓이다. 참으로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씨프린스호 사고 후 정부는 나름대로 투자를 하고 대비를 세워놓은 듯 했다. 사고가 났던 해에 해양오염방지법을 개정해 해양경찰청을 중심으로 방제작업 지휘체계를 일원화했다. 이듬해인 96년에는 해양수산부를 발족시켰다.

그동안 해운항만청, 수산청, 건설교통부 수로국, 해난심판원 등으로 나뉘어 있어 긴급사고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또한 해수부 산하에 첨단방제 장비 기술 개발과 운용,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제조치 교육을 담당하는 한국해양오염방제조합을 설립했다.

2005년에는 대규모 해양오염 위기 대응 실무매뉴얼도 만들고 가상훈련도 실시했다. 지난해에는 196억원을 들여 건조한 최첨단 방제선 '환경5호' 등 4척을 투입했다. 해수부는 당시 이 방제선에는 자동팽창식 오일붐과 시간당 100톤을 회수할 수 있는 첨단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런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7일 사고 당일 오후 2시 열린 브리핑에서 해수부는 씨프린스호 사고때와는 피해규모를 비교할 필요도 없다며 여유만만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시간 뒤인 오후 8시부터 검은 재앙은 태안해변을 덮쳤다. 해수부와 해경은 다음날 아침까지도 이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다. 엉터리 시뮬레이션 결과만 믿고 해상에서 철수한 사이 소중한 삶의 터전은 유린당하고 말았다.

당국이 그토록 강조했던 국가방제능력(1만 6,900톤)도 사실은 종이호랑이였다. 국가방제능력은 기름유출사고가 났을 때 3일간 하루 8시간씩 작업을 해 걷어들일 수 있는 기름의 양이다.

문제는 첨단방제선이 보유한 수거장비는 파도가 거세거나, 원유가 뭉쳐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사고발생 7일이 지난 13일 현재 폐유 수거량은 1,136톤으로 10%도 안 된다.

해수부와 해경은 기름유출사고가 날씨가 청명하고 파도도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고, 수거하기 좋은 기름만 흘러나올 거라고 믿은 걸까.

그럼에도 해경은 1년에 한번씩 하는 방제훈련을 잔잔한 바다에서 실시하며, 그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해수부는 이러한 사실도 인정하지 않다가 해수부장관 출신 대통령이 지적한 뒤에야 뒤늦게 꼬리를 내렸다.

효율적 방제조치, 첨단장비 운용, 방제기술 개발을 위해 1년에 652억원의 예산을 쓰고 472명이 근무하는 해양오염방제조합은 그동안 무엇을 했고, 해수부와 해경은 어떻게 대비했는가.

이런 수준과 자세로 어떻게 2012년 여수엑스포 주제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보여줄 수 있을까. 대통령은 앞으로 이런 일에 대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12년간 천문학적인 액수의 혈세를 쏟아붓고도 국민을 재앙에 빠트린 무능과 자만부터 절대 용서해서는 안된다.

최진환 사회부 전국팀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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