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丁亥)년도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세밑이다. 올 한해 국내ㆍ외에서 큰 성취를 이룬 최고경영자(CEO)가 있었던 반면, 각종 비리와 탈법 행위로 영어의 몸이 되거나 여론의 지탄을 받은 CEO도 있었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은 비자금 문제로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전사적으로 '올인' 한 여수엑스포 유치에 성공해 밝은 얼굴로 올해를 마무리하게 됐다.
여수 시민들은 지난달 말 인천공항에 도착한 정 회장을 '젊은 오빠 정몽구 회장님 사랑해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로 맞았다. 주위에선 "정 회장이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기쁜 날이었다.
글로벌 경영의 선봉에 섰던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황금돼지해의 행운이 두드러진 한해였다. 3개월 가까이 해외를 돌며 수출기업으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정립했고, 지주사 체제를 완성해 그룹이 한단계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회장이 오면 이긴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임직원들의 사기를 드높이기도 했다.
여성 CEO 중에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발걸음이 가장 분주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개성관광을 시작했고, 내년부터는 백두산 관광길도 열린다. 실적 호전으로 계열사인 현대상선과 현대증권도 순항했다.
'금융계의 별'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었다. '증시 권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해 증권가에서 태풍의 눈이었다. "미래에셋 쏠림 현상 탓에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질투 섞인 비판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응수하며 영토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은행의 수장으로 연임에 성공한 강정원 국민은행장도 눈에 띈다.
KT 민영화 이후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남중수 사장도 돋보인다. 그는 휴대인터넷(와이브로), 인터넷TV(IPTV) 등 신(新)사업과 러시아 이동통신사업 진출 등으로 수완을 발휘했다.
KTF 합병 및 지주회사 전환 문제도 통신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LG그룹의 '미운 오리새끼'였던 LG필립스LCD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권영수 사장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뚜렷이 각인시킨 한해였다.
두산그룹 오너인 박용만 부회장은 인수ㆍ합병(M&A)의 새 길을 열었다. 세계 최대의 중소형 건설중장비업체 '밥캣'을 국내 기업의 해외 M&A 사상 가장 큰 금액인 49억달러에 인수했다. "M&A 리스트에 여전히 많은 기업이 있다"는 박 회장은 내년에도 주목해야 할 CEO이다.
'오너 같은 CEO'로 불리는 이구택 포스코 회장에게도 영광의 한해였다. "M&A를 당하지 않으려면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말은 주주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실적과 주가도 강세를 보이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중견그룹 CEO 중에는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단연 두각이었다. 세계 2위의 크루즈선 조선소 '아커 야즈'를 10월 말 인수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낸 현대중공업(민계식 부회장), 삼성중공업(김징완 사장), 대우조선해양(남상태 사장), 한진중공업(박규원 사장) 등 조선업계 CEO들도 뜨는 별이었다.
■ 의혹… 고초… 낙오… 비상 걸린 CEO들
반면, 그 어느 해보다도 지루하고 끔찍한 한해를 보낸 CEO들도 있다. 특히 최근 취임 20주년을 맞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겐 회고하고 싶지 않은 정해년이 될 듯하다. 자신이 진두지휘 했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무산됐고, 하반기엔 '삼성 비자금 의혹' 파문이 옥죄어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보복폭행 사건으로 고초를 겼었다. '부정(父情)'에 호소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현재 일본에서 요양 중인 김 회장은 조만간 귀국, 굵직한 M&A건과 글로벌 전략을 챙기며 분위기 쇄신에 나설 예정이다.
한때 '벤처업계의 신화'였던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에게도 씁쓸한 한해였다. '삐삐'(무선호출기)로 출발해 중견 휴대폰업체로 성장했지만, 무리한 사업확장에 좌초했다. 고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실력과 덕망으로 연임에 성공한 직후 지병으로 운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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