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수요는 있었다. 결국, 문제는 적금 고객을 홀대해 온 은행들의 얄팍한 상술이었다. 금리를 소폭 올렸을 뿐인데도, 꼬박꼬박 돈을 모아 목돈을 마련하려는 서민들이 대거 적금 상품에 몰렸다.
은행들도 서서히 '적금 살리기'에 나설 태세다. 각 은행들은 내년 초 적금 금리 인상을 적극 준비중이다. 과연 적금이 '국민 재테크 수단'이라는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국민은행이 지난달 초 선을 보인 '가족사랑자유적금.' 기본 금리는 연 5.2%(3년제)이지만 가족구성원, 적립목표 달성, 자동이체, 신용카드 이용실적 등에 따라서 최대 6.0%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다른 은행의 적금 금리가 연 4%대에 머물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출시 40일만인 지난 10일 현재 10만좌를 돌파했다. 하루 3,000~4,000명의 고객이 적금을 가입한 셈이다. 첫 납입액 평균도 80만원이 넘었다. "예전 적금 호황기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상품을 개발한 담당자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과"(정현호 상품개발부 팀장)였다.
적립식 펀드 열풍이 불기 시작한 2~3년 전부터 은행 적금 상품은 쇠퇴일로였다. 2003년말 20조원을 넘었던 정기적금 잔액은 10월말 현재 13조8,542억원으로 급감했다. 적립식펀드가 새로운 목돈 마련 수단으로 등장하면서 적금 가입자들이 무더기로 이탈했다.
하지만 적립식펀드 열풍은 은행측의 핑계거리이기도 했다. 사실은 은행이 적금을 홀대한 것이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실 큰 기관 예금 한 곳만 유치해도 적금 고객들의 푼돈을 모은 것보다 금액이 더 크다"며 "은행 수익에 큰 기여를 하지 않는 적금에 신경을 쏟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1999년 정기적금 평균금리는 연 8.55%로 정기예금 금리(7.05%)를 크게 웃돌았지만, 10월 현재 오히려 정기예금(5.23%)이 적금(4.26%)을 1%포인트 가량 역전한 상태다.
국민은행의 흥행성공에 자극을 받아 다른 은행들도 적금 시장 공략에 서서히 뛰어들 태세다. 여기엔 최근 은행환경의 변화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투자 상품에 밀려 예금까지 이탈하는 마당에 안정적인 장기 고객 확보 수단인 적금의 중요성에 다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은행은 내년 초 연 5%대 적금 상품 개발을 추진 중이고, 신한ㆍ하나은행도 적금 금리 인상과 함께 특정 계층에 특화된 적금 상품 출시를 저울질하고 있다.
신한은행 상품개발부 구현수 과장은 "적금은 전통적으로 요구불예금과 함께 고객과의 접점을 강화하는 수단이었지만 한동안 은행측이 큰 신경을 쏟지 못했다"며 "적립식펀드의 높은 수익률에 길들여진 고객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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