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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기름유출 대재앙/ 日, 97년 나홋카호 중유 유출 '봉사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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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기름유출 대재앙/ 日, 97년 나홋카호 중유 유출 '봉사의 기적'

입력
2007.12.1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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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검게 죽어간다!”

1997년 1월 7일 일본 후쿠이(福井)현의 해안마을 미쿠니(三國)지역 주민들은 사색이 됐다. 5일전 시마네(島根)현 오키노시마(隱岐島)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유조선 나홋카호가 유출한 중유가 생활 터전으로 죽음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후쿠이현은 동강 난 나홋카호의 선체가 흘러 들어온 곳이어서 피해가 심했다.

그러나 절망은 잠시였다. 주민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며 다음날부터 기름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사투였다. 어린 중학생부터 60~70대의 해녀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은 양동이를 들고 허리까지 차는 기름 밭에 뛰어들었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현기증과 구토에 시달리고, 기름 독성으로 얼굴 염증이 번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 전개된 이들의 투쟁은 일본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전국에서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다. 10여일만에 전국에서 1만4,000여명이 미쿠니 마을 자원봉사자센터에 등록했다. 주말에는 1만명이 모여 복구작업을 통해 주민들을 위로했다.

후쿠이현뿐이 아니다. 중유 피해를 입은 교토(京都)부와 이시카와(石川)현 등 10개 부현의 해안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땀을 흘렸다. 복구가 진행된 3~4개월 동안 30여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뭉쳐 환경 재난에 맞섰다. 이중 5명이 과로로 숨지는 등 비극도 있었지만 일본 사회는 자랑스러운 상부상조의 전통을 남겼다며 기뻐했다.

이시카와현 가카(加賀)시 교육위원회는 97년 신학기 사회과 부교재로 만들어 환경과 자원봉사정신의 소중함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4월에는 미쿠니 마을 해안 복구에 참여했던 전국의 서퍼들이 모여 현지에서 서핑대회를 갖기도 했다. “바다가 깨끗해지면 다시 만나자”는 주민과의 약속을 10년만에 지킨 것이다.

나홋카호 중유 유출 사건은 인재의 성격이 짙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초동 대응에 실패해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일본 정부도 사건 발생후 8일만에 피해대책본부를 설치하는 등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 같은 사태에 대비해 95년 제정한‘기름 오염사건에의 준비 및 대응을 위한 국가적 긴급 계획’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교훈으로 다시는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일본 사회의 의지는 강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 정부는 해상 재난에 대한 국내외적 대응태세를 정비했다.

상징적인 예가 7개월 뒤 도쿄만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건에 대한 대처다. 당시 도쿄만에서 1만5,000㎘ 규모의 원유가 유출됐는데 일본 정부는 3일만에 말끔하게 해결해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후쿠이현이 원유 제거방법 등 독자적인 노하우를 알려주는 등 나홋카 사건의 경험이 사태 해결의 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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