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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유권자 얕보는 '패거리'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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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유권자 얕보는 '패거리' 선거

입력
2007.12.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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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선거는 유권자에서 시작해 유권자에서 끝난다. 당연한 말인 듯 하면서도 알듯 모를 듯하다. 학자들의 설명을 인용하면, 정치와 언론의 집단적 의제 설정과 관계없이 유권자의 고유한 관심이 선거의 주된 쟁점과 향방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미국 선거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도 진흙탕 네거티브 캠페인과 스캔들 중심 보도에 휘둘릴 것을 걱정한다. 그러나 실제 후보나 언론보다 견고한 '쟁점 집중'(issue focus) 태도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유권자는 현명하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우리 지식인들이 늘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촉구하는 습관이 어줍지 않은지 돌아볼 만 하다.

■ 민심 무시한 정치세력 실패

미국은 미국이고, 우리 현실은 남다르다고 할 것이다. 한국 정치의 특징이라는 '소용돌이 정치' 양상이 선거 때 특히 두드러지고, 정치 선진국 구경꾼들이 비웃음을 감춘 채 흥미롭다고 논평하는 것에 속 없이 우쭐대면서 저절로 운명적 소용돌이의 힘을 믿게 된 듯 하다. 그러나 역대 대선이 실제로 국민의 뜻, 유권자의 선택을 가늠하기 어려운 소용돌이 선거였는지 의문이다.

1992년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군인 대통령'시대의 종식을 바라면서도, 급격한 변화보다 보수와 안정을 선택했다. 그 문민정부의 무능과 IMF 사태를 경험한 97년에는 '준비된 대통령'을 선호한 것에 못지않게, 오랜 세월 DJ가 상징한 호남의 한을 풀어주는 과제에 은연중 공감했다. 완고한 이념의 벽을 조심스레 넘어서는 의식 변화도 작용했다.

결국 유권자들은 과거 유산의 극복을 통한 현실의 안정을 선택했다. 거창하나 막연한 표현이지만, 그게 시대 정신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 시대 정신은 2002년 기존 질서와 고정 관념을 크게 넘어서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기대하고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흔히 강조하는 동맹과 자주 등의 강파른 이념적 구분보다, 출신 계층 세대 등의 보편적 기준과 미래 비전이 유권자의 선택을 지배했다고 본다. 이를 뭉뚱그려 보수와 진보의 승부로 규정하지만, 유권자는 애초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집단이 아니다.

독단적 견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을 보수와 진보, 좌와 우로 확연히 나뉜 무리로 여기거나 그렇게 몰고 간 것이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이 모두 실패한 근본이다. 보수세력은 두 차례 선거에서 실패했고, 진보 쪽은 민심의 지지를 얻고서도 유권자가 바라보는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해 내달린 끝에 훨씬 크게 실패했다.

왜 뻔히 보이는 실패를 자초했을까. 저마다 목청껏 내지르는 소리에 제 귀 속이 울리는 이명(耳鳴)을 겪은 탓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스스로 외치는 구호와 겉보기 현란한 소용돌이 속에 어지러움 증을 겪은 나머지 민심이 가리키는 곳을 바로 보지 못하고 역주행과 폭주를 거듭한 결과다.

이런 병적 귀 울림 증세를 부추긴 것은 보수와 진보 양쪽의 강경한 시민사회단체 집단이다. 발끈하고 노하겠지만, 분수 넘치게 민심을 대변하고 이끈다며 거리와 언론에서 목청 높인 이들이다.

그렇게 세상을 바꾸고 나라를 바로 잡는다고 믿을지 모르나, 늘 가장 밝은 귀와 눈으로 선거와 나라의 향방을 결정한 것은 유권자들이다. 이는 이번 대선에서도 변함없을 것이다.

■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이 관건

퇴역 장성이든 종교ㆍ 사회 원로든, 평소 보수적 가치나 진보적 이상을 국민에게 일깨우고 솔선하는 역할을 넘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어떤 명분으로든 스스로 패거리 지어 유권자를 패거리 집단으로 나누려 시도하는 것은 민주선거의 본질을 왜곡하고 유권자를 낮춰보는 잘못이다.

민주헌법의 이상인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이 뜻하는 바를 되새겨야 한다. 좋은 대통령을 뽑든 나쁜 대통령을 뽑든, 유권자가 선거의 주역임을 깨닫는 것은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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