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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삼척 겨울바다, 애랑이의 전설이 갯바위에 부딪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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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삼척 겨울바다, 애랑이의 전설이 갯바위에 부딪친다

입력
2007.12.1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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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2월도 허리를 꺾는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난날의 회한을 털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시간, 내 안의 나를 다독여야 하는 시기다. 겨울바다로 마음이 절로 향하는 이유다.

헤드라이트가 가르는 어둠은 가슴속의 먹먹함 만큼이나 짙었다. 허한 마음 달래려 떠난 여행길. 차는 강원 삼척을 향해 달렸다. 원덕읍 신남마을 해신당 아래 갯바위로 나아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시커멓기한 하던 막막한 공간 한가운데에 붉은 기운이 번져 오르며 하늘과 땅을 나누었다. 의유당 남씨가 <동명일기> 에서 쓴 것처럼 “진홍대단 여러 필을 물 우희 펼친 듯 만경창파 일시에 붉어 하늘에 자옥”했다.

갯바위에 뿌리 내린 해송에도 그 붉음이 번져올 때, 드디어 바닷물 한가운데에서 숯불빛 태양이 떠올랐다. 새벽 찬바람에 얼어붙었던 온 몸이 덩달아 달아올랐다.

태양이 바다를 떠나려는 순간, 아쉬운 바닷물이 햇덩이를 붙잡는 듯 그 끝에 붙어 따라 오른다. 구름은 물론 적당한 습도가 맞춰줘야만 볼 수 있다는 ‘오메가 일출’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기에 생생한 일출 포착의 감격은 더욱 컸다. 이 행운이 온 것은 해신당의 영험 탓일까?

신남마을 앞에는 애바위라는 자그마한 섬이 하나 있다. 애달픈 전설을 간직한 섬이다.

옛날 이 마을에 장래를 약속했던 처녀 애랑이와 총각 덕배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덕배는 미역을 따러 간다는 애랑이를 이 바위섬에 내려놓고 밭일을 나갔다.

잠시 후 갑자기 파도가 거세게 몰아쳤고 배도 띄울 수 없었다. 덕배는 살려달라 소리치는 애랑이를 도울 방법이 없었고, 결국 애랑이는 집채 만한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그 후 바다에선 왠일인지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처녀의 원혼(손각시)을 달래기 위해 바닷가 언덕 오래된 향나무 옆에 당집을 만들어 제를 지냈다. 하지만 소용 없었고 주민들의 애는 점점 타들어갔다.

어느 남정네가 애바위에 욕설을 퍼부으며 바지춤을 내리고는 바다를 향해 시원하게 오줌을 갈겨댔다. 그런데 다음날 그가 뱃길을 나가자 그의 배는 만선으로 돌아왔다. 마을사람들은 그제서야 손각시 애랑이가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과 시월 첫 오(午)일에 제사를 지내며 남근 모양을 깎은 뒤 굴비두름 엮듯 새끼줄에 매달아 당집에 바쳤다. 오일은 성기가 가장 크다는 말의 날이다. 향나무로 만든 남근목은 꼭 홀수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삼척 작은 어촌마을의 ‘남근 봉납’ 제의의 전통은 21세기 들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됐다. 삼척시는 남근깎기 대회를 열어 당집이 있는 언덕에 조형물들을 전시하고 공원을 만들었다.

해신당공원의 전망좋은 벼랑에는 동해안 어촌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어촌민속전시관도 들어섰다. 전시관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갯바위 군락이 아름다운 해변산책로로 내려갈 수 있다. 아무래도 해신당공원의 백미는 야외에 설치된 거대한 목제 남근 조형물들이다.

고유의 이름인데도 드러내놓고 입밖에 내기 민망한 말이지만, 보란듯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해신당공원의 남근들은 당당하기만 하다. 해신당공원을 찾는 관광객들도 그 당당함에 그저 하나같이 유쾌한 웃음을 떠뜨린다.

삼척=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삼척 바다, 증산~ 맹방~ 해신당~ 드넓고 아늑한 58km

삼척의 바다는 광활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아늑하다. 총연장 58km의 긴 해안선 전체가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아늑한 포구, 파도 부서지는 기암괴석의 갯바위들로 이뤄져 있다.

해신당공원 고개를 넘어서면 발 아래로 갈남1리 앞바다가 펼쳐진다. 월미도라 이름붙은 솔섬과 그 앞 갯바위들의 풍경이 저절로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바닷빛이 유난히도 곱다.

곧이어 나타나는 장호항은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천혜의 절경과 억척스러운 어부들의 삶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미항이다. 항구를 지나 장호용화랜드에서는 아름다운 장호항의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용화해수욕장을 지나 만나는 고갯길의 전망대도 놓칠 수 없는 조망 포인트. 2개의 백사장이 이어지며 커다란 ‘3’ 자를 이룬다. 활처럼 크게 휘어진 용화해수욕장과 그 너머의 장호해수욕장이 그려내는 풍광이다.

초곡은 마라토너 황영조의 고향마을이다. 황영조기념관이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초곡의 또다른 자랑은 작은 터널과 소나무 우거진 숲길이다. 터널을 지나 숲길 끝까지는 800m. 오른쪽으로는 시원한 동해, 왼쪽으로는 나지막이 들어앉은 마을을 굽어보며 갈 수 있는 아늑한 길이다.

초곡리에서 궁촌해수욕장을 연결하는 솔밭길은 일제 때 만들어진 철도부지다. 철도는 깔리지 않았지만 용화해수욕장까지 이어진 4.7km의 이 구간에는 내년께 해안 레일바이크가 선보일 계획이다. 포구 궁촌에는 이곳에서 최후를 맞은 공양왕의 무덤이 있다.

맹방해수욕장과 덕산해수욕장 사이로 흘러드는 마읍천에는 민물과 짠물이 만나면서 만들어낸 S자로 굽어진 모래톱이 인상적이다. 삼척에서 가장 큰 백사장인 맹방해수욕장은 영화 <봄날은 간다> 에서 유지태와 이영애가 비오는 바닷가에 앉아 파도소리를 녹음하며 사랑을 키워갔던 그 장소다.

정라항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5km 구간을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의 이름은 ‘새천년도로’. 2000년에 개통돼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가까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길이고, 또 가장 망망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삼척해수욕장 해변을 따라 계속 달리면 증산해수욕장. 동해시 관할인 추암해수욕장과 이웃하고 있는 아름다운 백사장이다. 일출의 명소 추암의 풍경을 추암해수욕장보다 더 많이 담고 있는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입구에는 해가사터 정자와 기념비, 수로부인의 전설을 소재로 한 ‘사랑의 여의주’가 있다. 부부나 연인들이 여의주를 빙빙 돌리면서 소망을 빌고 사랑을 기원한다.

■ 여행수첩

삼척의 바닷가 어느 곳에서나 싱싱한 자연산 횟감을 즐길 수 있다. 삼척시민들은 손님이 찾아오면 보통 가까운 삼척해수욕장이나 새천년해안도로변의 횟집타운으로 안내한다. 좀더 싼 가격에 회를 즐기려면 임원항 등 포구로 가는 게 좋다.

요즘 임원항 등에서는 양미리와 도루묵, 곰치가 많이 잡힌다. 해장국 곰치국을 먹어보지 않으면 삼척에 안 간 것이나 마찬가지. 부드러운 곰치살 몇 토막에 푹 삭은 신김치를 썰어넣어 맛을 낸 곰치국 한 그릇이면 지난밤의 속쓰림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몸이 활기를 되찾는다. 정라항, 삼척해수욕장 등에 제맛을 내는 음식점들이 많다.

해신당공원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 (033)572-4429 삼척시 관광개발과 (033)570-3545

삼척=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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