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설업계가 대규모 미분양 사태와 금리상승으로 자금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공 공사 입찰에서 건설사들의 출혈 입찰 경쟁 고질병이 재발하고 있다. 적자가 뻔한데도 임시 자금 유동성을 위해 '묻지마 입찰'로 제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주택공사가 발주한 최근 아파트 건설공사의 낙찰률을 보면 최근 중소 건설업체들의 경쟁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주공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끝난 최저가 낙찰제 아파트 건설공사 입찰에서 주공이 당초 제시한 예정 공사가의 66% 금액에 수주한 업체가 나왔다.
공사 예정 금액의 3분의 1이나 싼 가격에 공사를 하겠다는 의미다. 주공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사들이 순익분기점으로 추정하는 70%를 유지하던 최저가 아파트 건설공사 낙찰률이 올해 상반기 68%대로 떨어지더니 본격적인 경기 하강국면에 들어간 하반기에는 65%까지 추락했다.
중소 건설업체인 S건설 관계자는 "미분양으로 자금이 묶여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입찰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출혈 경쟁은 자금여력이 있는 대형 건설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대형 건설사들은 몸집을 불리고 대규모 유휴 인력을 가동하기 위해 대형 공사에서 '덤핑 수주'에 나서고 있다.
올해 초 단일 공공 공사로는 최대규모(공사 예정가 1조3,000억원)인 신고리원자력발전소 3,4호기 입찰 당시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예정가의 61.5%인 8,000억원에 투찰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2003년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1,2호기(낙찰률 73.1%)와 신월성 원자력발전소 1,2호기(낙찰률 84%)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이다. 업계는 "예정가보다 5,000억원이나 줄여 공사하고도 남는 게 있을 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최근 한국토지공사가 실시한 금강1교 건설공사와 국도 1호선 우회도로 1공구 입찰에서 투찰 하한선인 60%대에 낙찰되는 업체가 나왔다.
막대한 설계비를 직접 투자하고 설계변경을 할 수 없는 턴키 공사의 특성상 이 같은 가격으로 수익을 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최저가 입찰제가 아니라 설계 등 기술심사가 중요시되는 턴키공사에서 덤핑수주전이 나왔다는 점에서 업계의 가격 경쟁이 도를 넘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더욱이 연말이 가까울수록 덤핑 수주전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여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등 전문가들은 "출혈경쟁으로 건설사들이 장기적으로 엄청난 빚을 떠 앉게 되는 구조적 부실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가격 경쟁만을 유도하는 최저가 입찰제 대신 기술력을 검증하는 최고가치 입찰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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