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밤. 서울 예원학교의 창 하나가 밤늦도록 불을 밝혔다. 컴컴한 복도 끝, 불이 켜진 방을 살짝 들여다보니 첼리스트 송영훈이 조현준(13)군과 함께 첼로 연주에 한창이다. 곡목은 비발디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g단조> 의 1악장. 두>
연습을 하다 현준이의 첼로 줄이 끊어지자 송영훈이 선뜻 자신의 첼로 줄을 건네준다. “악보만 따라가지 말고 신나게, 즐기면서 해. 표정이 이게 뭐야.” 선생님이 잔뜩 굳은 제자의 표정을 흉내내자 현준이도 그제야 웃음을 터트린다. 다시 진지해진 두 사람은 연주 내내 눈을 맞췄고, 송영훈은 “연습 많이 했네”라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음악교육프로그램 ‘해피뮤직스쿨’에서 만난 스승과 제자다. 올해 초 SK텔레콤이 만든 이 프로그램에서는 송영훈을 비롯해 백주영(바이올린) 주희성(피아노) 서울대 교수와 현민자(첼로) 연세대 명예교수 등 정상급 연주자와 교육자들이 주말마다 10~14세의 학생 45명을 지도하고 있다. 악기도 무상으로 지원해준다. 8월에는 줄리어드 음대 교수들이 찾아와 마스터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학생들의 수준은 천차만별. 콩쿠르에서 입상할 만큼 뛰어난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동요를 연주하는 아이들도 있다. 바이올린 분야에는 시각장애인도 있다. 하지만 음악에 높은 열의를 갖고 있고, 음악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점은 모두 같다.
어릴 때부터 첼로에 재능을 보였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꿈을 접을 뻔했던 현준이는 이 곳에서 공부하면서 싱가포르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내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콩쿠르에도 나간다. 현준이는 “선생님처럼 줄리어드 음대를 나온 다음에 베를린 필의 단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솔리스트가 더 멋지지 않냐고 했더니 “함께 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송영훈은 “얼마 전 학생들이 1년의 수업을 총정리하는 향상음악회를 열었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너무 잘해서가 아니라, 처음보다 2, 3배 발전된 모습이 보였거든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음악을 중단한다면 상처를 받아 빗나갈 수도 있을텐데, 아이들이 음악에서 위안을 받고 꿈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지난달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자신의 연주회에 45명의 아이들을 모두 초대하기도 했다.
9일 코엑스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해피뮤직스쿨&프렌즈’ 공연. 800여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생님과 제자가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현준이가 1년 수업 과정이 끝난 후 분야별 우수 학생에 뽑혀 선생님과 함께 서울바로크합주단과 협연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
여유있는 선생님의 리드와 열정적인 제자의 화답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첼로 선율에 큰 박수가 쏟아졌다. “현준이 이제 보니 무대 체질이네. 연습 때보다 더 잘했어.” 어깨를 두드려주는 선생님에게 제자는 “혼자 했으면 떨렸을 텐데 선생님이 같이 해서 괜찮았다”며 싱긋 웃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무대를 내려왔다.
해피뮤직스쿨의 공연은 1월 8일 부산, 10일 대전, 20일 광주도 찾아간다. 내년 2월에는 새로운 학생들을 모집하는 오디션이 열리는데, 인원도 대상도 확대될 예정이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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