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지음 / 열림원 발행ㆍ304쪽ㆍ9,800원
전경린(45)씨의 새 장편소설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6년전 이혼한 부모를 둔 스무살 여대생.
엄마의 ‘사생활’을 방해 안하려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재혼한 아내와 사별한 아빠가 불쑥 찾아와 새로 얻은 중학생 딸을 떨군다. “네 엄마한테 좀 맡겨라.” 그리곤 연락두절이다. 아빠의 황당하고 무책임한 작태로 급조된 ‘세 모녀’로부터 이야기가 경쾌하게 뻗어나온다.
전씨는 1995년 등단 이래 활발히 작품을 내면서 억압된 여성의 가치를 관능으로 회복하려는 존재를 주로 그려왔다. 그의 소설에서 가족은 일탈을 꿈꾸는 여성들과 파열음을 빚는 ‘가부장제의 전초기지’였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다르다. 작가는 ‘엄마의 집’이란 은유로 새로운 가족상을 제시한다.
물론 그 집은 엄마가 아등바등 돈을 벌어 마련한 소설 속 낡은 아파트 자체를 뜻하지 않는다. 이 집에서 재취한 전남편의 딸까지 포용하는, 유연하고 넉넉한 공동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씨는 “그간 여러 측면에서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는 가치를 추구했는데, 이런 부분적 모색들이 통섭하듯 연결되면서 타자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며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전씨의 초기 장편에 등장했던 ‘운동권 세대’가 새 작품에서 아빠로 귀환한 점도 눈에 띈다. 아빠는 어떤 직업을 구해도 2년을 못 넘기고, 전재산을 털어넣어 만든 논술학원에선 ‘반미와 부의 분배’ ‘현대사에 대한 재해석’을 강의하다가 쫓겨나듯 그만두는 생활 무능력자다.
그런 주제에 딸을 만날 때마다 <공산당 선언> 을 읽으라고 타박하는 이 ‘골수 386’을 세 모녀는 따뜻하게 응시한다. 그런 점에서 엄마의 집=가족은 여성뿐 아니라 역사에 휩쓸리고 소비돼버린 존재 모두를 감싸안는 공간으로 화한다. 공산당>
전씨는 “이혼 및 재혼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가족이 헤어진 엄마와 아빠의 세계를 잇고, 새엄마와 새아빠의 세계로까지 확장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전경린표 문장’은 변함없이 매혹적이다. 적확한 어휘와 독특한 비유, 다채로운 형식 변주는 기의(記意)와의 한치의 미끄러짐도 허용치 않는, 단단한 문장을 빚어낸다. “주르륵 써지면 일부러 쉬어간다”는 전씨는 “시각적으로 조형한다는 느낌으로, 단순한 지시가 아닌 감각으로 파고들며 전달되는 문장을 쓰려 애쓴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