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7년 만에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에 다시 선임 된 것을 축하 드립니다.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3위에 그치고 사퇴한 뒤 명예회복의 기회가 주어진 셈입니다. 그러나 허 감독께서 맡으신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은 일부 외신에서 '독이 든 성배'로 비유하듯 가시 방석과 같은 자리라 하겠습니다.
물론 거스 히딩크 감독의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운 탓이겠지요. 히딩크 감독이 물러난 지 불과 5년 만에 움베르투 코엘류,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감독이 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자의반 타의반 지휘봉을 놓았습니다.
이제 닻을 올리는 허정무호는 갈 길이 너무 멀고 험난해보입니다. 우선 허 감독님의 공과를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98년 전임감독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11명이 싸우고도 9명 태국에게 1-2로 패한 것은 허 감독님 축구인생에 오점일 것입니다.
레바논 아시안컵에서는 졸전 끝에 가까스로 3위에 머물러 지휘봉을 놓게 됐죠. 공도 있습니다. 현재 한국 축구의 기둥인 박지성과 이영표를 발탁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2승을 거두기도 했죠.
이 밖에도 허 감독님의 앞날에 발목을 잡을 만한 것은 또 있습니다. 이번 대표팀 선임 과정에서 처음에는 외국인 감독으로 뽑기로 했다가 계약이 무산되니 차선책으로 국내파 감독으로 급선회한 것입니다.
단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선임한 것은 더 문제입니다. 또 허 감독님은 대표팀 감독 사퇴이후 K리그에서 지도자로서 이렇다 할 성적(FA컵 제외)을 내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서 K리그에서 성적을 낸 김학범 성남 감독이나 장외룡 인천 감독 등 젊은 감독을 거론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제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이 두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한국축구는 올해의 부진을 잊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허 감독님의 가장 큰 적은 자신과 한 두 경기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축구계 주변의 흔들기 일 것입니다.
축구협회도 오랜 만에 국내 지도자를 앉힌 만큼 확실한 지원을 통해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평가는 외국인 감독에 준하는 만큼의 지원을 해 준 다음 해도 늦지 않습니다.
대표팀 감독 자리는 고독한 자리입니다. 다소 모양새가 좋지 않게 국내 지도자를 대표해서 시험대에 올랐지만 좋은 성적으로 다른 국내 감독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할 무거운 책무도 떠안게 됐습니다.
7년 전과 달리 축구 선수들이나 팬들이나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눈높이가 엄청 높아졌습니다. 팬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려면 허 감독님과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야 할 것입니다.
허 감독께서는 얼마 전 한국축구에 끼어 있는 거품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명성만 내세우며 훈련을 소홀히 하는 선수는 과감하게 내치십시오. 그런 뒤 진돗개라는 별명처럼 영리하고 근성 있는 팀을 만드십시오. 지더라도 박진감 넘치는 경기만 펼친다면 팬들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 기억 납니다. 대표팀 감독은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 할 임무다. 대충 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하셨죠. 한국 축구의 명운을 짊어진 만큼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시되 제발 독배만은 드시지 마십시오. 2008년 한국축구의 낭보를 기대해 봅니다.
여동은 스포츠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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