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 제 가슴도 새카맣게 변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저 바다도, 우리 삶도 끝났습니다. 막막할 따름입니다.”
9일 국내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리아스식 해안이 만들어내는 절경과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이 지역 해안에 시커먼 기름덩어리만 가득했다.
역겨운 기름 냄새는 해풍을 타고 바다에서 수Km 떨어진 곳에서도 물씬 풍겼다. 이 지역 항구와 해안에서는 정다운 파도 소리 대신 ‘기름 파도’가 만들어 내는 둔탁한 소리가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을 시커멓게 쓸어 내렸다.
어민들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그저 묵묵히 기름덩어리를 치우고 있었다. 김동권(63)씨는 “16년 전 침몰한 배에서 새나온 수십 톤의 기름 때문에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데 5년이 걸렸다”면서 “하지만 이번 사고는 너무 커서 피해가 얼마나 오래 갈지 가늠조차 안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현재 태안군 연안 굴, 바지락, 전복, 해삼 등 양식어장 250곳(3,571ha)과 6개 해수욕장(221ha)이 기름 범벅이 돼버렸지만, 피해 지역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김필문 파도리 어촌계장은 “미역, 해삼, 우럭, 바지락 양식장 전체를 기름이 덮쳐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며 답답해 했다. 국경호 만리포 어촌계장은 “올 8월 전복 종패 2억원어치를 뿌렸는데 다 끝났다”며 고개를 떨궜다. 어민들은 바다에 뿌린 유화제가 기름을 바다속으로 가라 앉히면 양식 어장과 바닷물이 오염돼 이 일대가 ‘죽음의 바다’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만리포의 넓은 백사장과 아이들이 생태 체험을 하던 갯벌도 4∼5㎝ 두께의 원유로 뒤덮였다. 주말이면 1,000여명의 관광객들로 붐비던 만리포 해수욕장은 관광객 발길이 끊긴 채 모든 상인, 주민들이 군인, 경찰관들과 함께 방제 작업에 나서 철시한 상태였다.
이들은 해안도로에 대형 플라스틱 물통을 놓고 바다까지 줄지어 서서 온몸이 기름 범벅이 돼도록 온 종일 기름덩어리를 퍼날랐지만 손으로 하는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만리포해수욕장번영회 최용복 사무국장은 “사고 이후 식당과 펜션, 여관 등 모든 시설의 예약이 취소됐다”며 “모두들 당장의 생계 문제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어민과 상인들은 사고 지점 남동쪽 30km 지점에 형성된 거대한 기름띠가 해안을 계속 내습하면서 응급조치에만 1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관계 당국의 예상에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었다.
사고 해역에는 이날 방제선 89척 등 함정 105척, 헬기 등 항공기 6대가 투입됐고, 군인, 경찰관, 민간 자원봉사자, 어민 등 연인원 1만여명이 해상과 해안에서 방제 작업을 펼쳤다. 그러나 피해 지역이 광범위한데다 방제 물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역부족을 실감하고 있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이평주(45)사무국장은 “흡착포 등 기름 제거용 물품 지급이 원할 하지 않다”며 “체계적인 현장 지휘와 방제방법 교육과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안=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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