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은 흡사 국립중앙박물관 같다. 투명한 청자와 백자, 순백의 조선 달항아리, 화려한 문양의 중국 도자기, 목이 떨어져나가거나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된 불상들. 그런데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모두 비누로 만든 것들이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조각가 신미경(40)의 개인전 ‘Translation’(번역)이 서울 삼청동 몽인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비누라는 일상적인 소재로 도자기와 불상이라는 동양 유물을 ‘번역’하는 작업이다.
오래된(것처럼 보이는) 불상들은 실제 몇몇 공중기관의 화장실에 비치되어 비누로 사용되던 것들이다. 시간의 마모를 적극적으로 껴안으며 박제된 유물이기를 거부하는 이 불상들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흐리며 교호한다. 시간과 공간의 의미에 대해 성찰해보게 만드는 똑똑한 전시다.
작가는 “비누는 쉽게 닳아 없어지는 성격으로 인해 시간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이미지와 실재의 구분을 두드러지게 하는 향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오랜 시간에 걸친 문화의 이동과 전이, ‘번역’에 관한 나의 관심사를 풀어내기에 무엇보다도 적합한 재료”라고 말했다. (02)736-1449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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