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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명랑한 밤길' 공선옥표 에너지 충만… 남루해도 꺾일 수 없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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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명랑한 밤길' 공선옥표 에너지 충만… 남루해도 꺾일 수 없는 희망

입력
2007.12.10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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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지음 / 창비 발행ㆍ292쪽ㆍ9,800원

활달하고 진솔하다. 공선옥(44ㆍ사진)씨의 네 번째 소설집 <명랑한 밤길> 은 “세련의 포즈와 인위적인 기교가 우세한 현시점에서 솔직과 정직의 태도로 오로지 삶과 맞장뜨는 문학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함”(평론가 양진오)으로 평가받는 공선옥 문학의 활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작년 ‘작가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에서 최우수작품으로 꼽힌 표제작을 비롯,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가난한 여성’이다. 경제적 계층과 성(性)에서 이중의 불리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은 냉엄한 것이다.

방 안에 ‘포마이카 장롱’을 들여보는 것이 평생 소원인 ‘요쿠르트 아줌마’ 문희에게 간암으로 죽은 전 남편의 필리핀인 아내가 “어니, 나 돈 없어, 나 살 없어, 나 한국 몰라, 나 무서워, 나 싸랑해” 울면서 도움을 청하고(‘도넛과 토마토’), 남편을 좇아 산골짝을 찾아든 아기 엄마는 폭우에 남편을 잃고 거처에서도 쫓겨난다(‘아무도 모르는 가을’).

표제작에서 변두리 마을 간호사 ‘나’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먹일 무공해 채소를 손수 재배하지만 결국 남자에게 채소와 함께 무참히 내동댕이쳐진다.

‘빗 속에서’의 남자 주인공도 사정이 안좋다. 소속 부서가 폐지되면서 회사를 나온 뒤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주변엔 유방암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아내, 학교에서도 포기한 말썽꾼 아들, 청과물 행상하던 트럭을 방화 당한 형, 정체된 도로에서 옥수수를 파는 부모 등 궁상이 즐비하다. 궁핍에 대한 문학적 보고서라도 불러도 무방한 공씨의 소설은 (척박한) 현실이 문학에 있어 얼마나 풍요로운 토양인가를 새삼스레 일깨운다.

하지만 공선옥 소설의 인물들은 씩씩하다. 현실의 고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식물형의 인간’과 거리가 멀다. ‘요쿠르트 아줌마’ 문희는 노숙인들이 소일하는 공원의 잔디밭에 매일 심겨지는-공원 관리원이 보는 즉시 뽑아내는데도- 토마토 묘목을 보며 스스로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는다.

혼전에 낳은 아이를 버렸다는 아내의 고백에 놀라 남편은 가출하지만, 어린 딸은 엄마에게 “또 오빠 한 명 낳아주세요”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79년의 아이’). 전직 여교사의 ‘임신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은 폐경으로 좌절되지만, 때마침 옛 제자들과의 따뜻한 조우가 이어져 상처는 위로받는다(‘폐경 전야’).

공씨의 소설은 세상의 낮은 자리에 임하면서 남루한 것들로 생의 활기를 빚는 연금술을 발휘한다. 모더니즘 일색의 2000년대 한국 문단에서 유난한 리얼리즘의 절창, ‘완전소중 공선옥’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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