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BBK 수사발표 이후 여러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수사결과를 믿지 못하겠다고 답하고, 정치권이 김경준(41ㆍ구속기소)씨의 검찰 회유 메모를 쟁점화하자 검찰이 적극 반박에 나섰다. 수사 내용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대부분 "대답하기 어렵다""확인할 수 없다"던 종전 검찰 태도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부글부글 끓는 검찰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7일 오전 브리핑을 자청, "중대 범죄로 기소된 피고인의 일방적 주장이 국민에게 여과 없이 전달돼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며 "검찰은 철저하게 적법 수사를 했고 어떤 형태의 협박이나 회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특별수사팀장인 최재경 특수1부장도 김씨 메모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해 우호적인 진술을 해주는 대가로 형을 감해주겠다'는 내용의 김씨 메모는 수사결과 발표 전날인 4일 공개돼 정치권 등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 부장은 "최근 보도에 마음이 아프다"며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이 중요한 사건에서 검사가 피의자를 회유하고 협박할 수 있는 지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라"고 말했다.
최 부장은 "김씨가 '검찰이 이명박을 무서워한다'고 하나, 검찰은 이 후보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며 "김씨가 '이 후보가 법원에 힘을 써 나를 10년, 20년 동안 감옥에 보낸다고 한다'고 해 내가 '한국 검찰과 법원은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변호인인 오재원 변호사가 전날 "일부 조서는 녹음, 녹화가 안 됐다"고 말한데 대해서도 수사팀은 "모든 조서는 녹음, 녹화돼 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현재 김씨 메모에 대해 조사 중이다. 검찰이 밝힌 대로 김씨의 주장을 100% 허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국어보다 영어에 능숙한 김씨가 미국에서 공개할 메모를 굳이 서투른 한글로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은 메모의 진위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또 교도관이 입회한 상황에서 김씨가 가족과 그런 메모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도 석연치 않다. 최 부장은 "외부에서 작성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검찰 회유설'에 대체로 회의적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만약 검찰이 김씨를 회유했다면 이 사실이 언젠가는 드러날텐데 검찰로서 평생 짐이 될 일을 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메모로 수사결과를 흔드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난 대선 당시 '병풍'의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해 온 측까지 검찰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김씨 수사의 터닝포인트는
줄곧 "BBK의 실소유주는 이 후보"라고 주장하던 김씨의 진술이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공교롭게도 본인이 그린 'LKe뱅크 및 BBK 지분 현황'이었다.
이 자료는 2001년 김씨가 자신이 BBK를 100% 소유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자필로 그린 것으로, 검찰이 이를 확보해 들이밀자 김씨는 "어!" 하며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스의 투자금 100억원이 BBK, LKe뱅크, EBK를 돌아 결국 다스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던 김씨는 검찰이 계좌추적 결과를 내놓자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 돈은 다스가 아닌 김씨 측으로 흘러 들어갔고, 현재 이 돈은 미국 재판 과정에서 압류돼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김씨에게 계좌추적 결과를 보여주자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글 이면계약서에 나온 주식 액수(49억9,999만5,000원)에 대해서도 검찰이 김씨에게 계산방법을 묻자 "그건 왜 물어보냐. 그냥 한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검찰은 "김씨는 자신이 이면계약서를 제출하면 검찰이 특별한 조사없이 이 후보를 기소해 재판 과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며 "수사가 중반을 넘기면서 한국 검찰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김씨에게 한국 형사소송법 책까지 보여주며 우리 법체계를 설명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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