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오판과 미숙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 사고가 났을 때 최악의 경우를 가상해야 했음에도 안이한 낙관론을 펼치며 기본적인 초동대처도 하지 않아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됐다. 기상악화라는 악조건을 인정하더라도 사고 선박주변에서의 적극적인 방제시도가 없었고, 인력ㆍ장비 늑장지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양수산부는 7일 사고 당일 브리핑에서 피해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유는 사고선박이 해안에서 10㎞ 가량 떨어져 있어 기름이 해안으로 밀려오기 전에 조기 방제가 가능하고, 겨울철이라 기름이 응고돼 더디게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또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불고 있고 조류도 썰물로 바뀌어 기름띠가 남서방 해안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사고당일 저녁부터 사고해역 인근인 학암포 천리포 해변은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 예상보다 20시간이나 이른 13시간 만에 도달한 것이다. 밤이 되면서 바람이 북서풍으로 방향을 틀었고 초속 10~14m의 풍속이 기름띠를 해안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국은 2005년 작성한'위기관리 실무매뉴얼'도 따르지 않았다. 매뉴얼에 따르면 기름 유출사고가 나면 선박을 중심으로 원형 오일펜스를 설치한 후 U자형ㆍJ자형 펜스와 유출유 회수가 용이하도록 V자형 오일펜스를 차례로 두어야 한다. 하지만 당국은 1차로 1자형 오일펜스만 설치한 후 우왕좌왕하다 초동 방제를 할 수 있는 황금 같은 낮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저녁에는 파고가 높다며 해상에서 대부분 철수해버렸다.
또한 오일펜스가 제때 공급이 안돼 집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가로림만, 학암포, 태안화력발전소 등 일부 해안 지역에만 펜스가 설치됐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사고선박 주변에 오일펜스를 매뉴얼대로 설치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유조선 기름유출 구멍을 신속하게 막지 못한 것도 문제다. 당국은 유조선 내로 기름을 긴급이송 하면서 7일 낮 12시께부터 유출은 더 이상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름은 계속 흘렀고 48시간만인 9일 7시께야 응급봉쇄작업이 완료됐다.
씨프린스호 사건 이후 정부는 대형유류유출 사고 발생시 각 대응기관과 단체들이 팀웍을 이뤄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제가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지만 8일 오전까지도 오일펜스와 흡착포, 유처리제 등이 도착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기름띠 방향을 점치기 위해서는 풍향과 풍속, 조류방향, 간만조, 해저지형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정부가 섣불리 전망을 내놓는 바람에 조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입을 모은다.
당국의 방제능력도 의문이다. 해양수산부는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 방제능력이 1,300톤 규모에서 2007년 1만6,600톤으로 향상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해양수산부가 주장하고 있는 방제능력대로라면 유출 기름을 대부분 회수됐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사고 발생 3일째인 9일 오후까지 유출유 1만500톤 중 회수된 기름 양은 156톤에 불과하지만 당국은 변변한 해명도 못하고 있다.
안경호 기자 khan@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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