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흔히 ‘X’라고 부르는 에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라는 대학이 있다. 1805년 나폴레옹이 “조국과 과학과 영광을 위하여” 라는 이름으로 X를 정착시켰는데, 지금도 국방부 산하 대학으로 남아있으며 국경일이면 행렬의 제일 선두에서 학생들이 제복을 입고 행진한다.
한국이랑 비교하면 국방과학연구소와 카이스트를 합한 것과 비슷하고 졸업생 중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수학자 말고도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 우주인이 각각 두 명씩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지적한 것처럼 싼값에 채용하고 쉽게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형 이공계 인력 양성이 목적인 한국과 달리 X는 세계 최고의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매년 400명 정도의 신입생만 선발한다. 우리나라가 싸구려 이공계 인력을 너무 대량생산한다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가 잘 보여주고 있다.
나폴레옹은 군사력과 산업생산에 과학기술과 표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마차 바퀴의 폭을 규격화했고, 나폴레옹은 마차의 각종 부품을 바퀴의 크기부터 표준화했으며, 대장간이 제멋대로 만들어 내던 나사도 오른나사로 통일하고 규격화했다. 어떤 의미에서 나폴레옹은 산업공학의 창시자이다.
“외교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쟁이다”라는 말은 잘 하지만, 국방력은 과학기술과 산업생산력이라는 말은 신기하게 다들 하지 않는다. 아마도 포병장교 출신이어서 나폴레옹은 남보다 먼저 진실을 알았을 것이다.
2차 대전 직전 영국 총리는 일본에 편지를 보내 미국과 영국의 철강생산 능력이 독일 일본 이탈리아 세 나라를 합한 것보다 훨씬 많다며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한다.
요즘 중국 일본 인도 등 각국이 경쟁적으로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군비경쟁에 대한 눈총을 받지 않으려고 우주개발이라는 포장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느 나라가 대놓고 21세기형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공표하겠는가. 미국은 25년 전 공군 산하에 우주사령부를 창설하였으며 중국도 지난해 베이징 인근의 우주사령부를 공개하였다.
필자에게 나폴레옹을 떠올리게 하는 지도자는 며칠 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다. 국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올 여름에 최초로 북극해를 지나는 항로가 잠시 열렸었다. 지구온난화 덕택으로 북극의 얼음이 녹기 시작해서 생겨난 일인데, 푸틴은 북극항로를 이용하려는 나라는 러시아와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10월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기사에 따르면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도쿄에서 유럽까지 거리는 3분의 1이 짧아진다. 앞으로 러시아와 캐나다 두 나라가 거의 독점하게 될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해적이 출몰하는 동남아시아 항로로 다닐 이유도 없고 수에즈 운하에서 대기하며 며칠씩 기다릴 이유도 없어서 시간도, 운송비용도 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이미 북극해는 미국과 캐나다의 외교 현안이 되었다. 푸틴은 한술 더 떠서 원자력 쇄빙선과 잠수함으로 북극점 아래 해저 4,200미터 바닥에 러시아 국기를 꼽고 한반도의 6배 정도 되는 대륙붕을 러시아 영토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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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근·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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