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오 글ㆍ김병하 그림 / 보리 발행ㆍ216쪽ㆍ1만3,000원
구수한 입담으로 옛날 이야기 한 보따리를 풀어놓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사라졌지만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자란 경험이 없는 요즘 엄마 아빠들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줘야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도토리 신랑> 은 “~했다, ~했습니다” 같은 문어체 대신 아기자기한 입말(구어)로 된 ‘옛 이야기 보따리’(1997)로 부모들의 고민을 크게 덜어줬던 서정오의 새로운 옛날이야기 모음집 ‘철따라 들려주는 옛 이야기시리즈’의 첫 권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옛 이야기 30편을 발굴해 엮었다. 도토리>
10년 전 펴낸 ‘옛 이야기시리즈’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욕심부리지 말기, 권면, 권학 같은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 <도토리 신랑> 에는 주제가 이야기 속에서 복류(伏流)하거나 특별한 주제없이 ‘길고 지루한 밤’을 지내기 위한 심심풀이 땅콩 같은 이야기가 많이 포함돼 있다. 도토리>
호랑이에게 잡혀간 아이를 찾기위해 꼬리를 잡아당기다가 호랑이 똥을 머리에 맞고 대머리가 된 힘장사, 도깨비와의 씨름에 이겨서 하늘을 날면서 팔도유람을 하는 가난한 나무꾼, 도토리처럼 작은 신랑에게 시집가 신랑을 잃어버리고 울상 짓는 새 색시, 산비탈을 한없이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는 호박 같은 이야기들이 그렇다.
그러나 옛 이야기 문체혁명을 이뤄냈던 작가답게 말놀이를 염두에 둔 입말을 풍성하게 사용하고 있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옛날 옛적 갓날 갓적 닥나무에 닭열리고 밤나무에 밥 열릴 적에’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고 까막까치 말할 적에’ ‘칭찬이 짜하다’ ‘궁량을 내놓다’ 같은 말부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족 하나 더. 참견 잘하는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효자이야기를 할 때면 “효자 이야기 하나 할까? 효자 이야기라고 하면 왠지 고리타분하고 재미 없을 것 같지? 하지만 이 얘긴 안그럴걸”이라고 시작하거나 한참 도깨비 이야기를 늘어놓고서 “이게 다 참말이냐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걸” 같이 짐짓 너스레를 떠는 작가의 개입은 절로 웃음짓게 한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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