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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도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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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도밤나무

입력
2007.12.1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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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밤나무는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한국특산 낙엽활엽교목이다. 키가 20m까지 자라는데 잎 모양이 밤나무와 닮았다. 10월에 익는 열매는 외피가 밤송이 형태와는 많이 다르나 밤톨 같은 견과가 1,2개씩 들어 있다. 그래서 밤나무로 봐줄 만하다 하여 너도밤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실제로 밤나무와는 같은 참나무과에 속하니 친척뻘이다. 우리 식물 이름에는 특정 식물과 많이 닮은 것에 이렇게 ‘너도’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너도바람꽃, 너도양지꽃, 너도방동사니, 너도제비난 등이 그것이다.

▦ 나도생강, 나도냉이, 나도박달 등 ‘나도’ 수식어가 붙은 식물 이름도 많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다른 식물에 대개 ‘나도’를 붙이는데, 억지를 부리거나 우긴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와 일본에 분포하는 나도밤나무는 넓고 길쭉한 잎이 몇 개씩 모여 나고 꽃이 원추형이어서 밤나무를 연상하기는 힘든다. 그러나 나도밤나무과에 속하는 서양칠엽수, 일명 마로니에라고 부르는 나무는 열매만은 밤톨과 매우 닮았다. 서양사람들은 말이나 먹을 밤이라고 생각했는지 이 나무를 ‘horse chestnut tree’라고 부른다.

▦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에는 이 나무 그림도 전시돼 있다.

고흐가 파리 근교 오베르에서 37세 짧은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1890년 5월 말, 그러니까 권총으로 삶을 마감하기 두 달 전 작품이다. 제목을 ‘밤나무’로 직역했는데 서양칠엽수나 마로니에, 아니면 잘 쓰지는 않지만 ‘말밤나무’라고 해야 맞다.

나치 치하에서 안네 프랑크가 다락방에 숨어 일기를 쓰며 작은 창을 통해 바라본 밤나무도 서양칠엽수다. 서양사람들이 이 나무를 흔히 horse를 빼고 chestnut tree라고 쓰는 바람에 혼동이 생긴 것이다.

▦ 12명 후보의 얼굴이 옆으로 늘어선 대선벽보를 지나칠 때면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가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한 자릿수 지지도라도 번듯한 정당의 후보이면 ‘너도 후보’라고 인정해줄 만하다. 하지만 소수점 이하 지지도 후보들은 돌려 받지 못할 거액의 기탁금을 내며 뭐하러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만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나도 후보요’라고 하고 싶은 이유가 있을 터. ‘나도’자 붙은 식물들이 저마다의 생김새와 아름다움으로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듯 이들도 나름대로 정치생태계의 다양성에 일조한다고 봐 줘야 하지 않을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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