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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9> 테렌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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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9> 테렌스 고

입력
2007.12.10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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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아시안 펑크 보이’인 테렌스 고의 열풍은 장난처럼 시작됐다. 의미 없는 낙서, 3류 퍼포먼스와 음탕한 의상들, 흑색과 백색의 심령술적인 오브제들, 어린이 프로그램용 성우를 흉내내는 목소리, 엉터리 영어, 아무렇게나 지어 부르는 경극 노래와 아마추어 게이 포르노 이미지들, 오리엔탈리즘, 비공개 파티, 무책임한 바보짓거리, 말도 안 되는 거짓말, 저질 인터넷 사이트(asianpunkboy.com/접속주의: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한 이미지가 다수 있음)와 노골적인 카피(남의 작품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등이 뒤섞인 그의 작업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활황을 맞은 미술계의 빈틈을 이용해 삽시간에 스타의 지위에 올랐다.

가만 보면, 그는 플럭서스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바보짓의 예술을 다시 부활시킨 셈인데, 전략적인 스탠스가 절묘하다. 오노 요코(거짓말로 사람 홀리기)와 쿠사마 야요이(미친 척해서 관객 방심시키기)의 전략 가운데 아시아 게이 남자인 자신에게 적용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차용했는데, 그 점이 주효했다. (그래서 작가의 왼쪽 다리는 동성애자 하위문화의 광기에, 오른쪽 다리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에 놓여있다.) 바쁠수록 심심해하는 예술 애호가들의 심리를 잘 이용했다고나 할까?

작가가 변덕스런 아트 피플의 호기심을 지속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상습적인 거짓말, 또 다른 하나는 비밀스런 파티와 헛소문. 현재 공식 프로필에는 1977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성장했다고 돼있다. 하지만, 사실은 나이도 더 많고, 싱가포르 태생인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확인된 바는 아니다. 어떤 오프닝에선 자신이 백인종과 황인종의 혼혈이라고 주장했고, 실제 명백히 혼혈로 보이는 여동생을 데려왔지만, 알고 보니 다 가짜였다. 연초에 휘트니미국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의 오프닝에는, 앙드레 김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백색 드레스로 무장한 부모님과 여동생, 그리고 한국인 부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진짜 작가의 가족이었을까? 물론 그럴 리 없겠다.

휘트니미술관 1층의 전시실에 눈이 멀 정도로 밝은 조명 하나만 설치해놓은 무례하고 안이한 개인전은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다이치 프로젝트에서 열린 성대한 오프닝 파티에는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주요 컬렉터들과 아트 딜러들, 그리고 젊은 파티광들이 한데 모여 비정상적인 열기마저 감돌았다. 누군가는 “잠시지만 전설적인 디스코 클럽 ‘스튜디오 54’의 느낌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테렌스 고를 놓고 미술사적 가치를 논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당장 다음 단계로 ‘도망칠 방법’마저 마땅하지 않아 뵌다. 허나, 이 기묘한 작가가 오늘의 아시아 청년 작가 가운데 가장 유력한 인물이라는 데엔 논란의 여지가 없겠다. 현재 소속은 페레스 프로젝트 갤러리고, 찰스 사치 등이 후원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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