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와 BBK 사건 등으로 어수선하던 지난달 22일, 국회 본회의는 '동서남해안권 발전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시민단체, 전문가, 환경부 등의 줄기찬 반대는 소용이 없었다.
동북아의 새로운 경제권 및 국제관광지역을 창출하겠다는 이 법은 말 그대로 동서남해안에 접한 전국 73개 시군구 자치단체의 특별한 개발을 목표로 한다.
법의 내용은 이렇다. 시도지사가 요청하면 건교부장관이 국립공원과 수자원보호구역 등에 상관없이 개발구역을 지정한다(7조). 개발구역에서 사업자들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과의 인허가절차를 면제받고(15조), 필요한 경우 개인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다(16조).
또 시도지사가 동서남해안권 투자진흥지구를 지정하면 입주기업들은 용지매입비를 융자받고, 토지임대료를 감면받으며, 기타 소요되는 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다(27조).
지자체는 해양관광산업 및 문화관광산업의 진흥을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고 지원해야 한다(28조, 29조). 정부는 국고보조금을 특별히 많이 주는 시행령을 만들고(제31조), 농지보전부담금 등 부담금도 감면해야 한다(32조).
이 법에 따르면 기존 36개의 법률, 69개 조항이 의제(면제)된다. 사업자들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주고, 지자체의 막개발 계획에 면죄부를 주고, 국가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떠안고, 국토 환경은 심각하게 유린될 판이다.
이 법은 지난해 8, 9월 민주당 신중식의원(보성ㆍ고흥) 등이 발의한 '남해안 균형발전법안', 한나라당 김재경의원(진주) 등이 발의한 '남해안발전특별법안', 중도개혁당 주승용의원(여수) 등이 발의한 '남해안발전지원법안'에서 시작했다.
남해안을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2000년 시작한 '남해안관광벨트' 개발 사업이 크게 실패하자 경남도, 전남도, 부산시가 이를 이어가기 위해 들고 나온 편법이다.
남해안에 네 개의 공룡박물관이 운영 중이고, 곳곳에 흉물이 된 관광단지와 유원지를 남기는 등 중복투자와 부실평가의 대명사인 사업을 살리기 위해 지역 국회의원을 동원한 것이었다.
게다가 국회 건교위에서 논의가 시작되자, 한나라당 윤두환의원(울산) 등은 '동해안광역권개발지원특별법안'을 들고 나왔다. 동해안이라고 이런 혜택을 누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건교위는 변변한 논의나 그 흔한 공청회조차 생략한 채 '남동해안 발전특별법안'으로 4개의 법안을 통합했다.
또 국회 법사위는 '서해'가 빠진 이유를 항의하는 의원들을 배려하기 위해 '연안발전특별법안'으로 이름을 바꾸고, 급기야 본회의에서는 동서남해안 발전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무려 국토의 29%를 대상으로 하는 법률. 국토계획의 틀을 허물고, 자연공원 관리의 근본을 어지럽히는 법률은 이렇게 어이없이 등장했다. 순전히 정치인들의 야합이, 지역개발에 대한 지자체의 이기심이 괴물을 만들어 냈다. 특별법이란 시기나 장소 목적 등을 제한해 일반법의 미비함을 채우기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
그런데 '동서남해안권 발전특별법'은 국토의 3분의 1 면적에, 산업과 관광 등의 폭 넓은 개발을 지원하고, 시한은 2020년까지 넉넉하게 잡고 있다. 입법기관이라는 국회가 법 논리나 법 정의를 파괴하는 쿠데타 법을 세우고, 국회의원들은 최소의 양식과 책임도 실천하지 않은 셈이다.
법 제정 이유에 명시되어 있듯이, 우리의 연안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품격 높은 역사·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곳들이 온갖 특례, 특혜, 의제처리, 규제완화를 다 동원한 초유의 개발특별법에 의해 난장판 개발의 위협에 처해있다. 그 중에는 한려해상, 다도해, 태안해안, 지리산, 설악산, 변산반도, 오대산, 경주 등의 국립공원은 물론, 자연공원 29곳과 연안의 섬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허황된 특별법 제정 사례가 불러올 효과가 더 걱정이다. 제2, 제3의 '동서남해안권 막개발특별법' 도미노가 일어나고, 전국이 막개발의 쓰나미에 내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국회에서는 '낙후지역개발 및 투자촉진특별법'을 제정 중인데, 이 법에 따르면 전국토의 59%가 개발 대상이다. 정말 특별한 특별법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남았다. 잘못된 의도, 잘못된 절차, 잘못된 법률을 바로잡을 사람은 그 뿐이다. 법률가 출신인 대통령이 나서서 국회의 잘못된 결정을 되돌려 보내고, 미처 날뛰는 지역이기주의와 무책임에 경종을 울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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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형철ㆍ환경운동연합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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