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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60명 '사이버 정치·경제 수업'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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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60명 '사이버 정치·경제 수업' 해보니

입력
2007.12.10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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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체제와 선거 시스템을 채택한 온라인게임을 통해 고교생에게 정치 수업을 실시한 결과, ‘변화’ ‘개선’ 등을 선호하는 진보 성향이 크게 줄고 ‘기존 가치’ ‘점진’ 등 자유주의 보수 성향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6일 경기 수원시 청명고와 중앙대 위정현(경영학과) 교수 연구팀, 사단법인 콘텐츠경영연구소에 따르면 10월15일~11월7일 청명고 1, 2학년 각 3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게임 ‘군주’를 이용한 정치 수업 결과는 흥미로웠다. 진보적 성향의 학생이 수업 전 28명에서 7명으로 줄었고, 자유주의 보수 성향의 학생은 4명에서 7명으로 늘어 진보와 보수 수가 똑같아 졌다. 진보 성향 학생이 대거 유입되면서 중립 성향의 학생 수는 27명에서 39명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게임 대부분이 돈벌이, 아이템 등 사고팔기, 동아리(파티) 맺기, 다른 동아리와의 대결 등 비슷한 구조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온라인게임 열풍이 청소년과 대학생의 보수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수업이란 이런 것

실험 전 연구팀은 설문조사를 통해 개별 학생의 정치ㆍ경제 성향을 파악했다. 이후 16차례 수업 동안 ‘군주’ 내에서 노사 갈등이나 세금 책정과 관련한 임무를 달성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임무를 받아 소집단(4인 1조)이나 대집단(10인 1조)을 구성한 뒤 상품을 제조 판매하거나 전쟁ㆍ교역을 통해 돈과 점수를 벌었다.

연구팀은 여러 경제 현안도 다루도록 했다. ‘세금 책정’과 관련한 8, 9차례 수업에선 조장이 걷는 세금 수입을 어떻게 해야 늘릴 수 있느냐가 평가 핵심이었다. 조장을 맡은 1학년 김모(16)군은 “조원은 세금을 조금 내서 재산을 불려야 개인 점수가 올라간다”며 “조장은 조원의 입장과 조 전체의 세금 수입을 고려해 세율을 결정하고 조원의 동의를 받아야 해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진보 줄고 보수 성향 늘어

연구팀은 수업 전후 각각 한 차례씩 학생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ㆍ경제 가치를 묻는 설문조사(7점 척도)를 했고, 그 결과 학생들은 수업 전보다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진보 성향은 평균적으로 수업 전 5.33에서 수업 후 4.95로 떨어진 반면, 자유주의적 성향은 수업 전 4.46에서 수업 후 4.93으로 증가했다. 진보적 성향은 ‘변화’ ‘개선’ ‘급진’이란 정치적 가치에 대해 ‘전혀 중요하지 않다’를 1로, ‘매우 중요하다’를 7로 매겨 측정됐다. 자유주의적 성향은 ‘기존의 가치’ ‘점진적’ ‘보존’ 등의 가치를 따졌다.

학생들은 ‘자국 내 산업보다는 자유로운 교역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문항에 대해 수업 전보다 수업 후 더욱 동의하는 의견을 냈다. ‘전혀 그렇지 않다’를 1로, ‘매우 그렇다’를 5로 했을 때 평균 응답이 수업 전 3.44에서 수업 후 3.58로 옮겨 간 것이다.

정치 경제 관심 부쩍 늘어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은 “평소 정치ㆍ경제에 그다지 관심이 높지 않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흥미를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 정책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재밌다’ ‘경제 정책을 다루고 있는 신문이나 TV 뉴스의 정치 기사를 읽는 것이 재밌다’ 등의 문항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를 1, ‘매우 그렇다’를 5로 했을 경우 각각 2.76과 2.71에 그쳤던 흥미도가 3.71, 3.52로 껑충 올랐다. 이를 포함한 전체적인 흥미도 역시 2.71에서 3.58로 상승했다.

1학년 노선희(16)양은 “처음엔 ‘게임으로 무슨 수업을 하냐’고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게임을 통한 수업을 받다보니 평소엔 잘 생각해보지 않던 분배 문제나 세금 징수 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온라인게임 군주

1598년 조선 시대 배경의 온라인 역사 롤플레잉(역할수행) 게임. 시장경제체제가 적용된 80개 마을이 있으며 각각 투표로 선출된 대행수(지도자)와 전장(은행) 여각(주식거래소) 객주(시장) 등의 책임자인 행수들이 지방자치를 이끈다. 외교 협상 투표대결 등을 통해 마을 통합의 수위를 높여가며, 마지막에는 백성(유저)들이 투표로 최고 통치자인 '군주'를 뽑는다. 엔도어즈사가 2003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글·사진 박원기기자 one@hk.co.kr

■ 실험 기획 중앙대 원은석 박사

중앙대 컨텐츠경영연구소 원은석(28ㆍ사진)박사는 6일 이번 실험 결과를 “학생들이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분배보다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선호하는 등 보수화가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_이번 실험이 초점을 맞춘 부분은.

“군주라는 경제 관련 온라인 게임을 통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제 정책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율과 규제 중 어느 부분을 지지하는 지, 그리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정치적 성향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_실험의 의의는.

“평소 실물 경제를 접해 볼 기회가 없는 학생들은 경제에서 소외되다 보니 정책 결정 등 정치에 대해서도 무관심 할 수밖에 없다. 이번 실험에서 학생들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해보고 누진세, 부유세 등 다양한 세금을 부과해 봄으로써 경제와 정책 결정을 함께 접해볼 수 있게 됐다. 수업을 해 본 학생들 중 상당수가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경제 관련 공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_아이템을 사고 파는 온라인 게임에 익숙하다 보면 자연스레 보수화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리니지에서 ‘해방 전쟁’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소수 게이머가 권력을 독점하자 다른 게이머들이 들고 일어나 혁명을 일으켰다. 온라인 게임은 현실 세계처럼 다양한 측면들이 있다. 게임 자체가 보수화로 이끄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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