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특성화고인 서울 도봉구 도봉정보산업고는 최근 경사를 맞았다. 지난해부터 운영한 유학반의 3학년생 7명 전원이 피츠버그, 오클라호마, 텍사스, 엠포리아 등 미국 주립대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고교재학생의 미국 유학은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가 아니면 쉽지 않다. 일반계고도 이루기 힘든 교육성과를 옛 실업고가 주축이 된 특성화고가 해낸 것이다. 특성화고의 성공은 도봉정보산업고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많은 특성화고들이 잇달아 유학반을 만들어 우수학생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문계ㆍ특성화고 유학반 구성 붐
특성화고 유학 붐을 선도하는 학교는 용산구 선린인터넷고다. 지난해말 14명이 미국 대학 IT관련 학과에 합격한 데 이어 재학생 16명이 내년 봄 유학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유학반을 운영하는 특성화고 대부분은 선린인터넷고를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교육내용은 보다 밀도가 높다.
경기 성남시의 분당양영디지털고 유학반의 경우 정규수업 전 아침 1시간 수학 수업, 방과후엔 4시간 영어 수업 등 하루 5시간을 별도로 공부한다. 영어 수업은 수준에 따라 2개 반으로 나눠 원어민 교사가 진행한다.
구로구 서서울생활과학고도 방과후 4시간씩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강도 높은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2주에 한번씩 시험을 치러 실력을 점검한다. 수업료가 몇 배나 비싼 외고가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유학반을 운영하는 경기 안산시의 한국디지털미디어고 등의 교육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IT 자격증으로 유학 돌파구
특성화고가 치열한 미국대학 입학의 경쟁을 뚫기 위해 내세운 무기는 IT자격증이다. 미국대학의 IT관련 학과들이 입학전형과정에서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하기 때문이다. 특목고나 일반계고 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영어 점수를 보완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유학반을 운영하는 특성화고들은 자격증 취득을 위해 별도의 특강을 여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분당양영디지털고의 유학반 1학년 32명은 최근 미국의 세계적인 네트워크 회사 시스코시스템스가 주관하는 국제정보기술자격증(CCNA) 시험에 합격했다. 유학반을 첫 운영한지 1년도 안돼 이룬 성과다. 외부강사를 영입하고 IT시설을 최대한 활용한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과 학생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 중 20명은 자격증을 발판으로 미국유학을 도전하고 있다.
내년 미국유학길에 오를 도봉정보산업고의 7명도 자격증 덕을 많이 봤다. 이 학교도 외부강사를 초빙하는 등 공을 들였다.
선린인터넷고도 자격증취득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자격증 취득이 미국대학 입학뿐 아니라 유학생활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유순옥 유학반 지도교사는 “영어가 다소 부족해도 관련학과 자격증이 있으면 미국 대학교육과정을 따라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 새로운 희망
특성화고 대부분은 공고나 상고에서 전환한 학교다. 최근까지는 학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미국유학의 새 등용문으로 두각을 나타나면서 입학생들이 조금씩 느는 등 몸 값이 오르고 있다.
신입생들의 입학 성적도 치솟고 있다. 홍인숙 분당 양영디지털고 유학반 지도교사는 “유학 프로그램이 알려지면서 예년과 달리 적극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며 “신입생의 중학 내신성적도 몰라보게 올라갔다”고 말했다. 서서울생활과학고 유학반 지도교사 김경희씨는 “입학 문의전화가 최근 부쩍 늘었다”며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해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이 특히 많아졌다”고 말했다.
유학반 운영은 기존 재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각인 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계고 학생에 비해 성적이 뒤쳐진다는 열등감과 자괴감도 많이 사라졌다. 유학지망생이 증가하면서 국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재학생도 늘고 있다. 홍인숙 교사는 “특성화고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여러모로 대학진학이 쉽지 않다”며 “유학반 운영이 학생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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