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한폭탄’석면에 노출돼 숨진 근로자의 유가족에게 회사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내려져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석면 관련 산업재해 판결은 있었지만 피해배상 판결은 처음이어서 유사 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대구지법 민사52단독 김세종 판사는 지난해 10월 숨진 원모(당시 46ㆍ여)씨의 유가족이 국내 최대 석면방직 공장이었던 부산 J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억8,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J사는 석면의 위험을 알면서도 근로자들에게 보호복과 보호마스크, 장갑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석면 먼지나 가루의 환기시설도 설치하지 않는 등 안전 배려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원씨는 1976∼78년 2년간 J사에서 석면 노출이 가장 심한 방적부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 그 후 26년이 지난 2004년 7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악성흉막중피종 진단과 산재 판정을 받았고 지난해 10월 병이 악화해 숨졌다.
시한폭탄 터지기 시작하나
원씨의 사망과 피해배상 판결은 드디어 ‘조용한 시한폭탄’의 폭발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석면에 노출된 근로자들에게서 악성중피종 질환이 나타나기까지는 15~30년의 잠복기를 갖기 때문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석면에 의한 직업병을 인정 받은 환자 43명 중 2005년 이후 인정받은 환자가 15명이다.
환경부는 석면 170톤 당 악성중피종 환자가 1명 발생한 선진국 사례를 감안, 70년대 연간 5만~10만톤의 석면을 사용한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300명의 악성중피종 환자가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곳곳에 숨겨진 시한폭탄들
문제는 석면이 주변 생활환경 곳곳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석면은 70년대 새마을운동 전개 당시 농총 초가집 개량은 물론 학교, 공공건물, 다중이용시설 등에 널리 사용됐다.
환경부가 지난해 80년대와 90년대 지어진 공공건물과 학교 6개 동을 대상으로 석면 사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 건물의 천장과 바닥재 타일, 회반죽 등에 석면이 사용됐다. 노동환경연구소도 지난해 전국 84개 사업장의 90%인 76곳에서 석면 건축재 사용을 확인했다.
예방 차원에 머물고 있는 정부 대책
정부는 7월 내년부터 석면함유량 0.1% 초과 제품의 제조ㆍ사용ㆍ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2009년부터는 이를 모든 석면제품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2009년부터 건축물을 철거할 때는 전문기관의 석면 조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예방적인 것일뿐, 과거 오염에 대한 대책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당장 보상과 지원을 받게 될 ‘석면 환자’ 지정문제 등 폭증할 피해자 구제책이 시급하다.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최예용 연구위원은 “최근 7년간 46명이 석면 질환(폐암 28명, 악성중피종 13명)으로 숨졌다”며 “정부는 석면공장 근로자와 주변 주민들을 상대로 피해 역학조사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김동국기자 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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