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임원들이 과거와는 달리 요즘 만나자는 연락이 뚝 끊겼습니다."
모 중앙부처 1급 실장의 고백이다. 김용철 전 법무팀장의 삼성비자금 의혹 폭로 사태 이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의 분위기는 바다에 떠 있는 한 조각 섬처럼 적막강산이다.
그룹 고위관계자는 "검찰 조사 및 특검이 가시화하면서 외부 사람들이 오해를 사기 싫은 듯 접촉을 꺼려 가급적 만남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룹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마비돼 경영 관련 업무도 올스톱 상태다. 전략기획실 수뇌부, 계열사 사장단 등 주요 경영진이 수사 및 소환 대상으로 거론됨에 따라 당초 연말로 예정된 사장단 정기인사가 기약 없이 미뤄졌다.
현재 분위기론 1월 중순의 연초 인사는 물 건너 갔고, 특검 수사의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되는 3월 하순 삼성전자 주주총회 직전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미 승진 대상자 선정 및 평가작업에 들어갔어야 하지만, 이를 못하고 있어 연초 사장단 정기인사도 어렵다"며 "하지만 주총에선 임기 만료 임원의 재선임안 등을 처리해야 하므로 3월 주총 전에는 규모에 상관없이 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특검 등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선 인사를 하더라도 규모가 매우 작을 것"이라며 "대대적 쇄신인사를 기대했던 승진 예정자들이 벌써부터 침울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 투자계획도 아직 확정 짓지 못했다. 삼성은 올해 연구개발 등을 포함해 총 20조9,000억원을 투자했다. 이 중 설비투자만 13조8,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600대 기업의 올해 설비투자 규모(80조원)의 6분의 1 수준이다. 그룹 관계자는 "분기별로 약 5조원, 설비투자만 3조원이 넘었는데, 아직 투자계획을 세우지 못해 내년 1분기 투자는 현실적으로 힘들어진 상태"라고 걱정했다.
한해의 세밑이 다가오면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에서는 연초에 나올 성과급(PS)잔치로 들뜬 분위기가 연출된다. 실적이 좋은 계열사의 사업부서 임직원들은 연봉의 절반에 가까운 수천만~수억 원의 목돈을 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그룹이 위기 상황인 탓인지 올해는 PS 얘기가 전혀 없다"며 "더욱이 임원 승진만 바라보던 고참 부장들 상당수가 허탈해 하고 있어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라고 말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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