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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자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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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자 통일?

입력
2007.12.10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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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어가 인기라니 외람되지만 독자 분들의 중국어 상식을 한 번 시험해 보자. 문제 1. 뚱시. 발음만으로는 모르지만 한자로 써주면 알겠다 싶은 분들을 위해 東西(동서). 정답은? "동쪽과 서쪽!"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흔히 쓰이는 뜻은? "…".'물건'입니다. 좀더 쉬운 문제. 판띠엔. 飯店(반점). "중국집?" 아닙니다. 호텔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국에 가면 东西, 饭点이라고 돼 있다.

중국어 표기가 한자로 돼 있으니 한자를 알면 뜻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알파벳을 알면 영ㆍ불ㆍ독어 단어의 뜻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런 착각을 하신 분이 지금으로부터 227년 전에도 있었다. 중국에 간 박지원 선생이다. 欺霜賽雪(기상새설)이라고 쓴 편액을 보고 '(마음이 깨끗하기가) 서릿발을 우습게 알고, 눈과 우열을 다툰다'는 의미로 이해했으나 사실은 국수집 간판이었다. 하얀 면발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한자 통일 논의가 부쩍 많아졌다. 한중일 세 나라가 한자의 글자꼴이 달라 불편하니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한자를 배울 때 현대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로 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보다 더한 시대착오가 없다. 세 나라 국민이 그 시간에 영어를 배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한자 모양이 달라서 서로 불편할 것은 하나도 없다. 한자를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 나라 말을 모르면 어차피 거의 무용지물이다. 타이완이나 홍콩 신문을 보라.

우리와 똑같은 정자체로 돼 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다. 글자꼴이 같으면 필담하기 좋다고도 하는데 필담 안 해 본 사람 얘기다. 필담을 할 만큼 한자를 능숙하게 쓰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한자어를 자기 나라 말 어순으로 늘어놓는다고 의사전달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영어로 하면 될 걸 왜 한자를 그려가며 그런 원시적인 일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한자를 배우는 이유는 한자를 모르면 한국어 어휘의 어원과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미 중고생들이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배우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굳이 한자를 섞어 쓰지 않는 이유는 한글 표기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간체자를 쓰고, 일본이 일부 약자를 쓰는 것 역시 제 말글살이를 위해서다. 19세기로 국제적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완전히 종을 친 한자로 동아시아를 보려 하지 말고, 영어로 세계를 보라.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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